곧 사라져도 될 기억과 오래 남겨두어야 할 기억을 구별하는 결정은 뇌의 측두엽에 있는 해마에서 이뤄진다. 모든 기억은 해마의 ‘미래기억 등재위원회’를 거쳐야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다.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려면 이처럼 뇌에 인지되어야 하고 인지 되려면 먼저 어떤 이유로든 주목 받아야 한다.

윤상애씨는 1976년 6월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고 실종됐다. 가족들은 서울 소재 보육원을 이잡듯 뒤지고, 라디오 방송과 신문에 사연을 보냈으나 허사였다. 가족들은 연일 잃어버린 딸을 찾아 나섰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40여년 동안 딸을 잃어버린 곳에서 맴돌며 장사를 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딸을 그리며 술만 마시다 세상을 떠났다. 

10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어머니 이응순씨(78)는 화상에 비친 44년전 잃어버린 딸 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 상애씨는 어눌한 한국말로 “엄마 예뻐요,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서울과 미국 버몬트주(州)를 인터넷 화상 통화로 연결하는 ‘언택트 상봉’이었다. 스크린 속 상애씨는 3살때 남대문시장에서 할머니 손을 놓친 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 됐다. 입양된 후 ‘데니스 매카시’로 살아왔으며 자신의 한국 이름도 ‘문성애’로 잘못 알고 있었다.

오래 전 잃어버린 가족 상봉이 쉬워진건 올 1월 시행한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에서 가족과의 유전자 정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34곳 재외공관 내 해외 입양인 통계를 수집했는데, 지금까지 약 17만 명에 이른다. 해방 후부터 1958년 이전의 숫자를 합하면 20만 명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홀트아동복지회가 8만603명의 고아에게 해외 입양의 길을 열어줬다.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해외 입양도 많았지만 상애씨처럼 실종케이스 또한 적지 않아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곧 사라질 기억도 많지만 뇌에 오래 저장되어야 할 장기기억은 소중하다. 눈물의 해외 입양 ‘언택트 상봉’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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