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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삼성상회 막내아들 저승에서 먼저 간 3부자와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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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10.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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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발인식이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연합뉴스

 

 

 아버지, 맹희·창희형 저승역서 마중
 모두가 빈 손으로 떠난 저승에서
 형제들 더 이상 다툴일이 있을까

‘글로벌 초일류’ 자신감 뒤로하고 영면을
 창업 1세대 이병철·구인회·정주영 등
 저승세계 경영은 어떻게 할까 궁금

 

 

김병길 주필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의 ‘귀천’) 삼성상회 막내아들 이건희 회장이 귀천(歸天)했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동반할 것이라고는 이슬과 노을밖에 더 있겠는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세상을 달관한 시인의 독백도 사실은 고통의 극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키운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의 뿌리는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대구 인교동에서 문을 열고 별표 국수와 청과물, 건어물 등을 팔았던 82년전의 삼성상회였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반도체 진출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이 선언했다. 하지만 그 씨앗은 한참 전인 1974년 30대 이건희 회장이 뿌렸다. 당시 사재를 털어 도산한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양심산업이자, 타이밍 사업”이라고 ‘업(業)의 개념’을 남다르게 정의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한민국 기업 창업 1세대다. 이병철은 장남 상속의 관행을 깨고 막내 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이건희에게서 ‘무언가’ 보았을 것이다. 이건희는 ‘글로벌 초일류’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병철은 오랜 세월 관상의 이론과 실전에 대한 내공을 쌓았다. 그런 관상 내공이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이나 간부 직원 승진과정에서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관상 중엔 이건희 회장이 있다. 관상가들이 말한 이건희 회장은 두꺼비 상이다.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며느리에게 손자를 기대하면서 하던 말이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낳아라!”다.

두꺼비는 재물의 상징이다. 삼성은 창업자인 이병철보다 이건희 대에 들어와서 엄청 커졌다. 선대에 묘를 금섬복지(金蟾伏地·금두꺼비 엎드려 있는 땅) 명당에다가 썼다고 전해지는데, 금두꺼비의 발복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두꺼비의 특징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날아가는 파리를 채 먹는다. 이건희 본인이 외부에 자기를 노출하면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은둔하면서 할 일은 다했다. 에너지 낭비가 없었다. 두꺼비는 정중동(靜中動)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저승으로 떠난 삼성상회 막내아들은 아버지 이병철이 저승역에 나와 마중했을 것이다. 먼저 떠난 큰형 맹희, 작은 형 창희와도 만났을 것이다.

한때 큰형 맹희는 ‘장자 대권’을 꿈꾸며 삼성 경영에 참여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대를 이을 재목으로는 의심스러웠다. 결국 제일제당을 물려받고 밀려난 맹희는 여러번 사고를 치면서 파락호처럼 살았다.

더 먼저 간 작은형 창희는 불운했다. 삼성이 1966년 울산석유화학공단에 설립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에 연류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 일찍 저세상으로 떠났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울산공업단지 건설을 권유하고 혁명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에도 참여한 이병철 회장은 우리 농촌 경제에 큰 기여를 하게될 비료공장 건설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한국비료는 뜻밖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반강제로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28년이 지난 1994년 초여름 한국비료의 민영화를 위한 매각 공고가 떴다. 당시 현명관 비서실장이 이를 보고하자 이건희 회장은 ‘반드시 찾아오라’고 했다. 금강화학과 대림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삼성 경영진은 고심 끝에 2,300억원에 입찰, 인수에 성공했다. 현재는 롯데정밀화학이지만 이건희 회장은 선대가 야심차게 일궜다 헌납해야 했던 한국비료를 경쟁사 응찰가보다 300억원을 더 주고 28년만에 되찾았다.

큰형 맹희는 세상을 떠나기전 뒤늦게 상속 문제를 놓고 동생 건희와 송사를 벌인 적이 있어 ‘삼성상회’ 최악의 형제난을 겪기도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철없는 형의 심술이 크게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승에서 형제들은 더 이상 다툴일이 있을까.

막내아들의 합류로 이승과의 인연이 모두 끝난 4부자의 저승세계 모습이 새삼 흥미롭다. ‘공수래 공수거.’ 한국 최고 재벌가 4부자는 모두 빈손으로 떠났다.

저승세계 삼성상회는 여전히 번창하고 있을까. 이웃에 있는 현대가(家), LG가(家), SK가(家)와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삼성과 현대는 국내 1등 재벌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현대그룹 총수 고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 도착하자 마중나왔던 고 이병철 회장이 “혹시 가져온 돈이 있으면 좀 꿔 달라”고 했다는 농담이 한 때 나돌았다.

고 이병철 회장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와는 사돈지간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자산업 패권을 놓고 한때 뜨거운 경쟁을 벌이면서 사돈간의 다툼도 불사해야 했다.

삼성은 2002년 무역수지흑자가 145억 달러를 달성해, 당시 한국전체 무역흑자(108억달러)를 넘어서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고 이건희 회장은 쓰러질 때까지 위기 경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는 6년 5개월만인 10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쓰러지기 7개월 전인 2013년 10월 열린 신경영 20주년 만찬회에서 “자만하지 말고 위기 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기업인들에게 세계 최고가될 수 있다는 DNA와 함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DNA도 심어줬다. 코로나 위기속에서 세상을 떠난 그에게서 다시 그의 위기 경영을 돌아보게 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싸움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인재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하라는 가르침은 시대가 흘러도 리더가 갖춰야 하는 덕목으로 3대(이재용 부회장)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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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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