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찰청 이진숙 경위, 수사 경험 책으로 묶어
직접 본 이춘재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이코패스"…고유정도 면담

11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지방경찰청 청사에서 프로파일러 이진숙 경위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억원대 원룸 건물을 보유한 재력가 어머니와 멀쩡하게 회사를 잘 다니던 30대 장남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신고자는 20대 차남이었다.

실종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주변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이 잇따라 발견되자 대대적으로 수사본부를 꾸렸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수사로 확인된 각종 정황 증거는 차남 부부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차남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기 사흘 전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했고, 그날 밤 퇴근한 형에게도 수면제를 탄 맥주를 마시게 한 뒤 같은 방법으로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훼손한 어머니와 형의 시신을 강원도 정선과 경북 울진에 각각 유기했다. 시신을 버릴 때는 그의 아내도 동행했다.

이들 부부는 도박 빚에 시달리던 중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차남의 아내는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경찰에 지목한 뒤 공범으로 몰리자 유서를 남긴 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사건 발생 40여 일 만에 발견됐고, 차남은 존속살해 및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인천 모자(母子) 살인 사건'이 발생한 2013년 당시 인천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 이진숙(49·여) 경위도 수사본부에 합류했다.

차남의 아내와 이른바 '라포'(면접자와 피면접자의 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해 시신 유기 장소를 실토하게끔 한 이가 이 경위였다.

그는 차남의 아내와 원룸에서 함께 잠을 자면서까지 친밀감을 유지했고, 경찰은 결정적 증거인 피해자들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경위는 12일 "당시 차남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듯 틀에 박힌 진술만 하면서 아주 담담하게 조사를 받았다"며 "면담을 할수록 모든 계획은 아내로부터 시작됐고 그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어 "수사 초기부터 시신을 찾을 때까지 차남의 아내와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사건의 핵심인 그로부터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아쉬움이 많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경위는 2005년 '범죄분석 요원 1기' 특채로 경찰관이 됐다. 지금은 흔히 프로파일러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다.

프로파일러는 살인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가서 범인의 흔적을 찾은 뒤 사건을 분석하고 용의자를 찾을 단서를 수사팀에 제공한다.

또 범인이 검거되면 일대일 면담을 통해 출생부터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전 과정을 들으며 상담하고 심리검사도 해서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든다.

이 경위가 프로파일러로 특채될 당시 함께 선발된 동기는 여자 경찰관 10명과 남자 경찰관 5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지금까지 프로파일러로 활동 중인 여자 경찰관은 이 경위가 유일하다.

그는 "동기 중에 법무부로 가거나 프로파일러 의무 복무 기간인 5년을 다 채우고 경찰 내 다른 부서로 옮긴 친구들도 있다"며 "당시 1기 여자 프로파일러 중에는 혼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이후 프로파일러 특채로 7기까지 60여 명이 뽑혔고 현재는 전국에서 35명이 활동 중"이라며 "이들 중 70%는 여자 경찰관"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살인범이나 성폭행범 등 강력 사건 피의자만 300명이 넘는다. 그들 중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이춘재(57)와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37)도 있다.

이 경위는 10차례가량 면담하며 본 이춘재를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로 판단했다.

그는 "면담 중에 이춘재에게 '기억에 남는 피해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대답을 못 해 '생각해 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이춘재는 "(성폭행 피해자) 한 명이 생각난다. 당시 그 여성도 즐긴다고 생각했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이 경위는 그가 상대방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물로 느껴졌다고 했다.

이 경위는 15년간 프로파일러로 굵직한 사건을 경험하며 느낀 생각과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 등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최근 펴냈다.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이 경위는 가족 내 살인이나 아동학대 사건 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인간을 향한 애정도 강조했다.

그는 "사건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며 "프로파일러가 무엇보다 갖춰야 할 자질은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잘 들어야 하고 듣다 보면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 때가 있다"면서도 "저녁 무렵 목이 잠길 때는 잘 듣지 못하고 많은 말을 한 날이어서 부끄럽지만 반성한다"고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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