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되면 온가족 김장하던 어린시절 떠올라
김치에 수육 싸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
가족‧이웃 간 김장으로 ‘정 나누기’ 어떨까

 

허성관 울산광역시교육청 미래교육과장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이 지나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다가오면,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김장은 집안의 큰 행사 중의 하나였다. 겨우내 가족들이 먹을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어머님은 고춧가루와 쪽파, 갓, 마늘, 파, 생강, 멸치젓갈, 찹쌀풀 등의 많은 부재료를 며칠 전부터 서둘러 준비하셨다. 배추를 뽑아 마당 한가득 쌓아두면, 이를 다듬고 두쪽으로 갈라 소금물에 절여 숨을 죽이는 과정을 거친다. 다시 깨끗한 물에 헹궈 채반에 쌓아 물이 빠지면, 가까운 친척들과 온 가족이 모여 정담을 나누며 온종일 김장을 했다. 점심 때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서 흰쌀밥과 함께 배불리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고,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님께서는 매년 직접 재배한 무와 배추로 김장을 해서 자식들에게 넉넉히 나눠 주셨는데, 가족 중에 유일하게 나는 멸치젓갈을 넣은 김치를 먹지 못했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님은 별도의 김치를 담그는 수고를 하셨다 .
 나는 멸치젓갈 냄새에 유난히 예민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멸치젓갈 사업을 하는 집에 장가를 가게 됐다. 처가댁은 2층으로 된 본채와 그 주위에 여러 동의 부속 건물로 돼 있었는데, 본채의 2층을 제외한 모든 건물 내에는 멸치젓갈로 가득 차 있었다. 집 입구에 들어서면 진한 젓갈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지금은 완전히 적응됐지만, 젓갈 냄새를 너무 싫어했던 나로서는 한동안 처가댁에 갈 때마다 힘든 시간을 감수해야만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처가에서 김장을 한다. 장모님은 종갓집 맏며느리로 큰 살림을 사셔서 그런지 손이 커서 해마다 많은 양의 김장을 해서 거래처에도 보내고 이웃들과 나눠 드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처가의 김장 날 풍경은 지금도 옛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김장 때가 다가오면 잊혀진 시간 속으로 옛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몇해 전 김장을 끝내고 뒷정리를 하다가 불쑥 장모님과 아내에게 오늘 담근 김치를 직원들과 함께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큰 통에 김치를 가득 담아 줬다. 수육은 잘 아는 집에 미리 주문을 했다. 갓 삶아 온 수육과 김장김치를 직원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직원들과 마음을 나누고자 시작했던 김장김치 파티는 두 곳의 학교와 교육지원청에서 근무했던 5년 동안 연례행사가 됐다. 직원들이 김장김치와 수육을 함께 먹으며 보낸 정겨운 시간을 훗날 교직 생활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김치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발효 과정에서 발생한 젖산균이 면역력을 증가 시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장김치에는 몸에 좋은 갖가지 재료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성이 어우러져 있다. 유네스코는 2013년 가족과 이웃이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눠 먹는 우리의 김장 문화를 세계가 함께 보존해야 할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가족의 건강과 이웃 간에 정을 나누기 위해 올해는 한두포기씩이라도 김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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