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한해 보내고 새해 준비하는 시기
코로나로 못한 일들에 마음 더 바쁘지만
후투티가 돌아올 따뜻한 봄 기다려보자

이인호 시인

후투티가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딘가로 떠나지 못한 우리는 곧 이 곳에서 겨울을 맞게 될테죠. 겨울은 더 추워지고 여름은 더 더워지고 봄과 가을은 더 짧아졌다고 합니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끝과 끝을 오락가락하는 세상에 조금씩 피곤하게 적응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행성의 궤도를 보여주는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굳이 천장에 매달고 싶다는 걸 달래서 냉장고 옆에 붙여놨습니다. 가운데 있는 지구인지 화성인지 모를 행성은 동그래지는데 실패해서 울퉁불퉁합니다. 우리는 그걸 만들다 만 행성 ‘만성’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다행스럽게도 잘 붙어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니 애정이 가고, 아이들도 인사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지구’라고 이름 붙인 사람이 궁금해졌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지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후투티도 참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과 어울리게 지구상에 1종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름을 듣고 멋들어지게 날카롭게 솟은 머리 볏을 금세 떠올립니다.

우리 주변엔 이처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더불어 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관심 밖에 있을 뿐이죠. 그래도 우리는 이런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질병의 습격에 무기력해 보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건 지구 나이에 비하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인류는 이번에도 이 전염병을 이겨낼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이 질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지금도 난민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으로 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지구 생태계가 조금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많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눈을 조금만 돌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둘러봅니다. 지금 고통 받으며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인터넷 뉴스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택배 노동자,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 힘이 없어서 힘에 겨워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우리가 이 지구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질 들뢰즈는 “문제의 해법에만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도 옳고 그른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그 문제를 바라봅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 지를 구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봅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을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게 하고, 인간이 일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시간을 노동하게 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코로나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라는 질병보다도 이 질병이 가져오고 있는 문제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해를 정리하고 다시 한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서로 같은 시간인데 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마음만 바쁜지도 모릅니다. 바쁜 마음을 되돌려 잠시 생각합니다. 후투티는 봄이 되면 다시 숲으로 찾아올 겁니다. 우리는 봄이 되면 무엇을 찾아서 되돌아 올 수 있을까요? 다가올 봄이 잔인한 겨울을 견디게 될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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