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한 사람 =그림 박지영 | ||
불행한 사람
아프리카민요
내 눈에는 다래끼가 났는데
악어란 놈이 내 다리를 잘라 먹었네
마당에 있는 염소란 놈 풀을 먹여야 할 텐데
솥 속에는 멧돼지 구이가 끓고 있구나
돌절구통 속 곡식은 말라빠지고 있는데
임금님은 나더러 재판 받으러 오라네
게다가 나는 장모님 장례식에도 가야할 몸
한마디로 나는 더럽게 바쁘다네
― 레오나드W.두브 編, 김산희 譯
『아프리카 민요시집』(실천문학의 시집·4)
<감상 노트>
절판된 시집이어서일까. 예사 맛이 아니다. 아프리카 냄새에 푹 묻힐 수 있는 특권도 좋다. 「악어란 놈이 내 다리를 잘라 먹었네」라는 원제로 많이 알려져 있는 시다. 이 시의 재미는 마지막 행에 있다. 딱 미치고 돌 것 같은 저 ‘불행한 남자’가 처한 상황이 혹 당신은 아니신지? 그렇다면 “젠장 바빠 죽겠네”(다른 譯) 한 번 외치며 훅 털어버리시라고 말하고 싶다. 실은 악담도 이런 악담이 없다는 걸 안다. 악어가 다리를 잘라먹은 엄청난 사실과 겨우 거둔 곡식마저 절구통에서 말라 가고, 재판에, 장모님 장례까지 벌어져 있다니. 남은 한쪽 다리로 재판장에도 가고. 장례식에도 헐레벌떡 뛰어갔을 남자. 위로를 건네야 할 판에 킬킬 웃음이 나니 요 못된 심보를 어쩔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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