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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칼럼] 이해·공감을 일치시키는 원자력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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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인철 해오름동맹 원자력혁신센터장
  • 승인 2021.01.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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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철 해오름동맹 원자력혁신센터장


원자력만큼 효율·에너지밀도 높은 것 없다고 이해하지만
사고·방사선 재해 공포 탓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워

소형 모듈 원자로 개발·4차산업혁명 기반 안전 혁신 필요

에너지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에너지의 본래 의미는 ‘일(Work)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이 용어는 외래어다. 우리가 에너지라고 부르는 이 외래어는 사실 어디서 왔을까? 과학에서 ‘일=힘 곱하기(X) 거리’로 정의된다. 따라서 에너지는 어떤 힘을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얘기한다. 
그러면 힘과 움직임은 무엇인가? 사실 과학의 기원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사실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자연 그 자체이다. 과학자들은 밤하늘 별들의 움직임에 의해 호기심을 자극 받았다. 움직임의 원인인 힘을 정리한 뉴턴의 사과도 그 사과의 떨어짐이라는 움직임 그 자체다. 과학자들은 자연 그 자체를 움직이는 것(운동), 즉 변화로 보고 이 변화를 연구해왔으며, 이 운동(변화)이 왜 일어나는지 호기심을 발휘 한 끝에 힘에 대한 개념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을 예측하고 싶은 호기심에, 이 운동할 수 있는 능력 차이를 정의하고 싶은 에너지라는 개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는 ‘나를 대신에서 일해 줄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미치고 이것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를 대신해서 일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대신해서 음악과 조명도 켜주고, 나를 대신에서 생각(결정)해 줄 수 있고, 나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인공지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에 한 가지 빠진 것이 바로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줄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그 효율이 시간당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되어 일의 효율, 일률(Power)로 쓰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움직임의 세상이며 그러한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용하는 것이 결국 에너지와 일률, 파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겐 자연이 존재하는 한 무한한 에너지(일을 할 수 있는 능력)가 있다. 효율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영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을 중요시한다. 시간에 대한 움직임을 많이 만들어 내지 않는 에너지는 사실 우리의 시간 개념 아래서 그리 중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힘 X 거리’가 일인데 내가 마라톤에 참가하여 42.195Km를 완주하는 일을 하였다고 해보자. 우승을 판단하는 완주를 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힘 X 거리/시간=일률’의 중요함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갖는 문제는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일의 효율, 일률, 파워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여기에 공간에 대한 개념이 들어간다고 보자. 같은 일을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데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공간이 넉넉한지 이 넉넉한 땅에 제약이 없는 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가축도 키워야 하고, 식물도 키워야 하고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주거 공간과 경쟁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에너지원에 대한 논쟁을 해오고 있다.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어느 때보다 중요시 되고 있다. 이해와 공감은 참 좋은 말인 것 같은데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해와 공감의 차이는 머리로 이해하느냐 마음으로 이해하느냐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에너지에 대한 위기가 아닌, 일률과 공간(땅)의 위기로 이해해 본다면 현재 에너지원 중에 원자력만큼 일률과 에너지밀도를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보다 나은 이해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본다면 어떠할 것인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일어난 원자력 사고·방사선 재해에 대한 공포로 인해 어려울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감정이 우리의 현실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 과학기술 필요성일 것이다. 이해와 공감의 불일치가 지금 현재의 문제라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나올 것이다. 이해와 공감을 일치시키기 위해 자연의 힘만으로 작동하는 소형 모듈 원자로의 개발 및 AI를 포함한 4차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원자력 안전 증진 같은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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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철 해오름동맹 원자력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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