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 선원 떠나면서 방치된 여인숙
장생포 문화거점공간 행복공방 탈바꿈
부산으로 옮기며 더 큰 ‘고래의 꿈’ 고대

 

변의현 사회적기업 우시산 대표

울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울산은 ‘고래’를 품은 고래도시이지만 외지인들에게 ‘울산’은 어떤 이미지일까.
그들에게 울산은 여전히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공업도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울산은 국보 285호 선사시대 반구대암각화를 품은 역사의 도시이자, 전국 두 번째의 국가정원을 도심에 두고 전국 유일의 고래축제를 여는 생태도시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제조업으로 부흥했던 그 기억은 울산이 가진 본연의 환경과 문화적 가치를 덮어버렸다. 이미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자산(반구대암각화, 태화강, 귀신고래회유해면)들의 가치를 다시 찾고 대중의 기억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란 이렇게나 어렵다.
이제라도 울산 공업도시 옆에 고래도시와 반구대암각화를 나란히 떠올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환경’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져버린 지금,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쉽게 쓰고 버렸던 일회용 커피잔이, 빨대가, 비닐이 우리에게서 일상을 빼앗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래’를 떠올리면서도 자연히 버려진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고래의 사체를 연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고래가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우시산의 환경사업은 결국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시산은 울산만의 특화된 문화콘텐츠인 고래와 고래문화특구 내 도심재생 건물인 장생포 아트스테이(구 신진여인숙) 마을행복공방을 활용해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
지금의 장생포 아트스테이는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 포경을 금지한 1986년까지 고래잡이 선원들이 묵었던 공간이다. 이후 오랜 시간 버려진 채 방치돼 있었지만 울산 남구가 행정자치부의 ‘2017년 마을공방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지금의 문화거점공간으로 바뀌었고, 당시 행자부가 주관한 영남권 지역공동체 우수사례로 꼽혔던 우시산 무거동 본점의 행복공방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우시산은 행복공방에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된 울산 남구 장생포의 ‘귀신고래’를 모티브로 2018년 ‘별까루’ 캐릭터를 개발했다. 이어 2019년 울산항만공사와 SK이노베이션, UN환경계획 한국협회 등과 업무협약(MOU)를 맺고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가는 플라스틱으로 별까루 고래인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별까루 고래 완제인형과 지역민들의 손품으로 제작된 만들기 체험키트는 지금까지 3만개 이상 팔려나갔고, 울산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고래의 본고장 장생포에서 플라스틱을 모아(소형선 부두, IoT 분리 배출기), 장생포 아트스테이 마을행복공방에서 제품을 제작하고, 이렇게 제작한 제품을 고래박물관 기념품점에서 소비되는 구도를 갖춘 것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환경’은 이제 전 지구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 나라 정부가 여러 가지 환경정책들을 시행하기 시작했고 국내외 기업들도 앞다퉈 ‘ESG 경영’을 발표하고 있다.

울산 역시 ‘지속가능한 그린경제 중심도시 도약’을 올해 시정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이런 변화의 큰 물결에 발맞춰 사회적기업이자 관광벤처기업인 우시산도 울산과 부산에서 ‘환경’에 ‘관광’을 결합한 혁신적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데 매진할 계획이다.

울산 장생포의 고래잡이 선원들이 떠나면서 오랜 시간 버려진 채 방치됐던 신진여인숙을 처음 찾던 날, 리모델링 후 ‘행복공방’ 간판을 달던 날, 우리의 꿈을 담은 공간을 자신 있게 서울 손님에게 소개했던 그 날들을 잊지 못한다. 내 고향 울산 장생포에서 성장한 마을행복공방은 이제 더 큰 ‘고래의 꿈’을 꾸기 위해 부산으로 진출하지만 늘 마음은 이곳에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꾸준히 고래를 위한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울산 장생포와 도심재생의 새 명소가 될 부산 비콘그라운드에서 뵙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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