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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길 주필 회상록] 뭐 하러 왔노 <7> 중앙일보시절-1980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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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1.01.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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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신군부는 언론통제 일환으로 유사이래 최초로 언론사 통폐합이라는 칼을 휘둘렀다.강준만의「한국현대사산책」에서 발췌

 

신군부 언론 재편성 나서 ‘자체정화’ 명분 기자 해직 조치
신문 주재기자 퇴출, 필자 등 2명 외 전원 해직 운명
언론사 통폐합, 중앙매스컴 TBC TV는 KBS에 흡수

 

김병길 주필

해가 바뀌고 울산 주재 2년째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유혈극이 절정에 달하고 있던 5월 22일 전두환은 각 신문사 발행인을 불러 계엄확대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언론의 협조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본사와의 전화통화로 들을 수 있었다. 

“광주사태 보도의 책임자인 사회부장들을 요정으로 불러내 1인당 1백만원씩 촌지를 돌렸다. 당시 중앙일간지 부장급 월급이 45만원 내외였으니 1백만원은 거금이었다. 일부 사회부장들은 부끄럽고 괴로워 부원들과 통음을 하는 것으로 그 돈을 다 써 버렸다.”「윤덕환 <전두환 정권하의 언론>」

신군부는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하자 언론 재편성 조치에 나섰다. 문공부가 기자들에게 ‘보도증’을 발급하는 이른바 프레스 카드제는 기자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장치로 기능했다. 프레스 카드는 1년에 한 번씩 갱신됐는데 문공부는 기자의 성향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급을 거부했다.

중앙정보부 울산분실에서도 수시로 기자들의 프레스 카드를 체크했다. 또, 프레스 카드제를 이용, 젊은 기자들에게 일종의 이념교육인 ‘언론인 연수’를 강요했다.

이어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가 벌어졌다. 국보위의 지시에 따라 보안사 준위 이상재가 보도 검열단에 가담해 만든 ‘언론 대책반’이 ‘언론계 자체정화 계획서’를 작성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해직 대상은 “언론계의 반체제 인사, 용공 또는 불순한자, 이들과 간접적으로 동조한 자, 편집 제작 및 검열 주동 또는 동조자, 부조리 및 부정축재한 자, 특정 정치인과 유착되어 국민을 오도한 자”등 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보안사는 언론사에 출입하는 언론 대책반 요원들을 통해 해직 대상자를 선정했다. 치안본부, 중앙정보부 등과 합동으로 작성한 명단은 모두 336명이었고 이 가운데 해직된 기자는 298명이었다. 

해직은 최소한의 격식 조차 갖추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울산에서는 어느날 울산경찰서에 언론인 해직 심사 회의가 열렸다.

당시 15명의 신문 주재기자와 지역 방송기자가 심사 대상이었다. 지역 보안사 요원과 보안사 추천 지역인사들이 기자 개인별 신상조사와 비리여부 등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됐다. 결과는 처참했다. 신문 주재기자제 폐지로 지역 신문기자 중 필자와 조선일보 C기자외에 전원 해직 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지역 방송 간부 1명은 ‘삼청 교육’ 대상자로 지목 됐다. 본인은 ‘내가 왜?’라면서 펄쩍 뛰었으나 가차 없었다.

신군부는 언론인을 숙청하면서 일부 언론인에 대해선 본인이 뉘우치고 협조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해당 언론사의 책임자가 보증하면 재고하는 식으로 33명의 언론인을 구제하였다.
신군부는 전체 기자의 30%를 해직시키고, 나머지 기자들은 ‘공포 분위기’라고 하는 채찍으로 통제하면서 나중엔 각종 혜택으로 포섭하는 당근 전략을 썼다.

전두환 정권은 후일 ‘언론 악법(惡法)’으로 비판 받은 언론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청와대 공보비서실 비서관 허문도가 주축이 돼 만들어 1980년 12월 26일 국회를 통과해 같은해 12월 31일에 발효되었다.

이로서 전두환 정권은 문공부장관에게 언론사 정·폐간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강압적인 언론 통제책을 시행했다.

이에 앞서 1980년 한 해 내내 언론사 통폐합 소식이 나돌았다. 울산에서는 제대로된 내용을 알 수 없었으며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심지어는 중앙일간 신문을 각 도별로 분산시킨다는 황당한 루머도 들렸다. 예컨데 중앙일보는 인천으로, 동아일보는 대전으로 보낸다는 해괴한 소문들이었다. 

울산에 앉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어 매일 서울 본사로 전화로 문의하면 본사 역시 ‘오리무중’ 이라는 대답 뿐이었다.

1980년 11월 12일 오후 6시경, 서울 보안사령부에는 언론사 대표들을 태운 검은색 승용차들이 몰려들었다. 서울 지역 13개 언론사의 발행인과 경영주 17명에 대해 포기각서를 받는 작업은 이날 어렵지 않게 끝났다.

보안사는 이어 전국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각서를 받았다. 내용은 조건 없이 언론사를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980년 11월 14일 신군부는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했다. 그 결과 KBS는 중앙매스컴의 TBC TV·라디오, 동아일보의 DBS라디오·전일방송·서해방송·대구 FM 등을 흡수하였다. TBC TV는 통폐합 조치후 KBS 2TV가 되었다.

신문은  ‘1도(道) 1지(紙)’ 원칙하에 부산의 국제신문이 부산일보에, 대구의 영남일보가 대구매일신문에, 경남 진주의 경남일보가 마산의 경남매일신문에, 광주의 전남매일신문이 전남일보에 흡수통합되었다. 통신은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을 합병해 연합통신으로 발족했다. 기타 시사·경제·산업 등 군소 통신사는 문을 닫았다.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은 잠시 ‘서울의 봄’을 맞아 자유화의 기대에 부풀었던 언론의 기(氣)를 완전히 꺾어 자발적인 충성을 유도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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