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정창준.  
 

거리가 필요한 즈음의 거리

정창준

질병이 들자, 혐의는
친밀함에게 돌아갔고
의심은 최고의 상비약이 되었다.

6피트 이내의 거리는 금지되었고,
마스크에서는 더 이상
홍콩의 향냄새가 나지 않았다.

바람은
화분대신 비말을 운반했고
바람을 등진 우리의 시선은 허공에서
더 자주 난처하게 엇갈렸다

만남은 비밀스러운 시간대로 미뤄지고
언제나처럼, 입이 가장 두려워서
불안을 소독약처럼 도포했지만
좀처럼 증발되지 않았고, 불안 대신
약간의 직원들만이 증발되었다

드라이브 쓰루는
맥도날드가 종교보다 훨씬
무해함을 일깨워 주었고

주말이면
문 닫은 가게들을 지나
각자의 차를 타고 해변으로 나가
띄엄띄엄 모래 위에 놓인 채
파도의 간격이 옮았음을 천천히 복습하곤 했다


정창준 시인
1974년 울산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8년 시집 <아름다운 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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