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민주신보 울산특집판  
 
   
 
  ▲ 1950~1980년대 각종 신문지국이 몰려 있어 울산뉴스가 쏟아져 나온 동헌앞 신문사거리 현재모습.  
 
   
 
  ▲ 울산언론 100년사(울산시문화원연합회)  
 

우리나라 언론사로 보면 울산은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울산출신 개화기 선각자 추전 김홍조가 조선과 동아일보보다 10여 년 앞선 1909년 진주에 경남일보를 창간해 지방신문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장성운 씨(울주문화원 이사)가 울산의 약 100년간의 신문, 방송역사를 담아 ‘울산언론 100년사’(발행처 울산시문화원연합회)를 썼다.
책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의 울산언론사를 시대별로 나눠 싣고 있다.
1926년에는 중앙에서 창간된 3대 민간지 조선일보 지국장 김기오, 동아일보 지국장 박병오, 시대신문 지국장 강철이 중심이 돼 ‘울산기자단’을 창립했다.
장성운 씨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울산 기자들은 단순히 언론인으로만 활동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3·1운동 후 신간회와 각종 청년회 등 사회단체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이들 단체의 지도자가 돼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들 대부분이 해방 후 가난한 농민 편에서 일하다 보이 좌익운동가로 몰려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 때문에 그들의 활동이 사라졌다.
해방 후에도 울산 출신 언론인들 중에는 중앙으로 진출한 인물들이 많고 또 주재기자들 중에도 공업도시 울산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공해와 열악한 교육환경 등 산업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울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촉구한 언론인들이 적지 않았다.
해방이후 근대까지 중구 원도심의 동헌에서 동아약국 사거리가 울산 뉴스창고였다.
50년대 대부분의 지국 사무실은 이 거리 양편에 있었는데 해방 후 군청이 가까워 기자들은 이 거리에서 뉴스를 얻은 후 기사를 본사에 송고했고, 이런 현상은 80년대 까지도 지속됐다.
심지어 울산시청이 옥교동을 거쳐 신정동으로 옮겨간 후에도 지국이 이곳에 그대로 있었다.
또 장성운 씨에 따르면, 부산일보의 한삼수와 이철응, 국제신문의 정인걸과 김상수, 경남신문의 김무신과 강경수기자는 공업도시 울산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공해와 열악한 교육환경 등 산업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울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촉구했다.
책에 실린 조선과 동아일보가 보도했던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의 옥중생활, 친일파 노덕술의 경찰활동, 대형수재와 화재 사건 등 일제강점기 울산관련 기사를 통해 당시 울산인들의 삶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해방 후 공비출몰과 피살, 김종신 서장 피살, 교원노조 활동, 국민보도연맹 사건, 울산공업단지 조성, 한비사카린 사건, 윤동수 사장 구속, 가재어린이 사건, 효주양 유괴사건, 현대 노사분규, 광역시 승격 운동 등 울산에서 그동안 발생했던 대형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히 수록해 울산의 근현대사를 두루 살필 수 있다.
부록으로 울산지역 방송역사도 기록해 놨다.
장성운 씨는 “해방 후 1960~1970년대 까지만 해도 울산에는 사이비 기자들이 많았고, 이들이 적지 않은 민폐를 끼친 것이 사실”이라며 “울산언론인들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없다. 앞으로 건전한 언론풍토가 조성되기 위해 언론인은 물론, 사회적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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