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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매일-울산여성가족개발원 공동 【울산여성독립운동 톺아보기】 울산! 여기, 여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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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금  
 
   
 
  ▲ 이효정  
 
   
 
  ▲ 이효정의 노년기 모습.  
 
   
 
  ▲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 울산 노동 여자 야학원 학예회 동극 장면.  
 
   
 
  ▲ <여성공론> 창간호(1946)에는 이순금이 쓴 ‘조선여성에게’라는 글이 실렸다.  
 
   
 
  ▲ <울산여성의독립운동> 책  
 

글 싣는 순서
1프롤로그
2울산여성 독립운동사를 시작하며

3울산여성, 식민지를 살다
4울산여성의 교육-배워야 산다
5울산 여성의 사회운동-민족해방, 여성해방의 길로
6울산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생애와 활동
(1)이순금(1912~?)
(2)이효정(1913~2010)
(3)손응교(1917~2016)
(4)울산의 여성사회운동가

신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신에게 인간의 성별이 적용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의문 없이 신이 ‘남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관념과 상상은 시대를 초월하기 어렵다. 서구 백인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신이 ‘백인 남성’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타고난 혈통이나 지위, 성별이나 인종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차별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보편적 인간’으로 대접 받지 못했다.
개항 후 한국을 방문했던 서구인들은 공통적으로 완고한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의 낮은 지위를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았다. 그들이 보기에 신분이 높든 낮든 한국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사실상 아무런 공적 발언권도 갖지 못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1883년 겨울에 서울을 방문했던 미국 외교관 로웰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물질적으로 육적으로 여성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성은 영(零, zero)이다.” 당시 여성은 힘겨운 가사와 생계를 위한 노동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소유와 통제의 대상인 ‘사물’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런 처지에서 그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는 매우 어렵다.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기록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현실의 불평등은 기록의 불평등을 낳는다. 여성들에 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삶이 보잘 것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록한 자도, 기록 내용도 모두 지배층 남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거의 언제나 남성 중심의 서사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여성의 독립운동사를 쓰려면 끈기 있는 사료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져야 하고, 부족한 기록을 여성사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내려는 노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 기준에서 현재 상황을 둘러보면 울산여성의 항일운동사를 쓸 수 있는 기초 조사나 연구는 매우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당장 여성독립운동의 역사를 요구한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가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울산의 여성들이 처했던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당시에 여성들이 당면했던 식민지적 조건과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되는 여성의 교육과 사회운동 영역에서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들 앞에는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이라는 이중의 과제가 놓여있었다. 일반 여성에게는 여전히 가부장적 덕목이 강요되었고, 가난한 여성은 돈에 팔려가는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여성의 교육 기회가 확대되면서 ‘신여성’이 등장했지만 그들도 역시 차별적인 경계와 가혹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울산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에 대해 알려주는 사료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부족하나마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울산의 상황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둘째,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와 알려진 사료를 가지고 가능한 범위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의 삶과 실천을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울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범서 출신의 이순금이다. 이복 오빠인 이관술과 더불어 1930년대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이순금은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월북했다. 독립운동가 누구도 남북 분단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해방과 더불어 분단은 강철 같은 현실이 되었으며, 7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분단과 이념대립의 모순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이순금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정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월북 이후의 상황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에 대한 재구성과 해석은 더 이상 미루지 않아야 한다. 그 밖에 뒤늦게 독립운동가로서 서훈을 받은 동구 일산의 보성학교 교사 출신 이효정, 항일운동과 직접 연결되어 활동하고 희생했지만 ‘그림자’ 취급을 받았던 손응교의 삶 또한 울산여성 독립운동사의 맥락 안에서 적극적으로 복원될 수 있다.
셋째, 비록 개개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는 없지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울산 여성들의 이름과 활동을 지금이라도 기록하고 향후의 연구를 기약하는 것이다. 울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징역형을 산 송명진이나, 서울로 유학 가서 근화여학교에 다니던 중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했던 이갑술 같은 여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가보훈처의 서훈까지 받았지만 간략한 공훈 이력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또 일제강점기에 울산에서 결성되었던 다양한 여성 단체와 거기에 참여했던 여성들에 대해서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향후 추가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현 시점에서 가능한 한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해 두어야 한다.
어떤 실천도 주어진 사회적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순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도전이 쌓이다 보면, 사회는 변화하고 역사는 진보한다. 울산여성의 항일독립운동사는 ‘남성 못지않게’ 용맹하게 싸웠던 울산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해서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려져 있었거나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다양한 실천에 일단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의 무대로 불러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그것이 지역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면서 새롭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울산의 역사를 여성사 관점에서 되짚어본 적이 없고, 사료를 발굴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없었다. 토대가 미흡한 상황이기에 현 단계의 울산여성 독립운동사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울산의 역사에서 여성의 존재와 실천을 확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용감하게 내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울산! 여기, 여성이 있었다.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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