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시인

거제도의 아담하고 깨끗한 기념관·소박하고 평온한 생가 방문
청마선생 시 세계 빠져 감동…어제가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져
가까운 통영으로 구불구불 산길 넘어가며 고충 헤아려보기도

통영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통영은 자주 가보고 싶은 곳이다. 작전 이맘때에는 아들의 차를 타고 가서 무척 편했다. 아들이 주도해서 더 좋았다. 계획했던 대로 먼저 거제도에 도착해서 청마기념관과 청마생가를 방문했다. 청마기념관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청마 선생의 어제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들은 나에게 낭송을 들어보라고 헤드폰을 귀에 꽂아 주었다. 
청마시집『생명의 서』에 실린「바위」라는 시였다. 낭송가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청마의 시세계에 더 감동이었다. 북만주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나라 없는 한 백성으로서 그때의 길이 얼마나 큰 고통이셨을까. 청마 선생의 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깃발」이다. 그런데 오늘은「바위」가 내 심장을 후려쳤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책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詩 「바위」 전문 
청마생가는 거제시 둔덕면에 있다. 2000년 5월에 옛 모습(1908) 그대로 복원되었다. 두 채의 초가로 마당, 텃밭, 우물, 장독, 뒤뜰, 돌담 등으로 소박하고 평온한 집이었다. 나무대문 오른 쪽에는 박태기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마당 왼쪽에는 텃밭과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 돌절구통에는 살얼음이 떠 있었다. 나는 얼음을 지그시 누르면서 아픈 어머니를 생각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아래채에 앉아 손바닥을 문지르는데 마치 고향집 마루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하늘에는 구름 몇 덩이가 떠 있었다. 생가의 본채는 점심때가 돼서야 햇볕이 훤히 들고 저녁에는 노을도 볼 수 있겠구나싶었다. 청마 선생께서는 댓돌 위의 하얀 고무신을 신고 마당에 서서 멀리 산방산을 오래 바라보셨겠구나 싶었다. 자주 마을 입구의 팽나무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셨겠구나 싶었다. 
생가를 빠져나가는 길이었는데 청마우체통이 유난히 빨갛게 빛났다. 청마의 시「행복」이란 시의 앞부분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주차장 앞에서 넓은 가슴을 펼치고 있는 팽나무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청마생가가 있는 마을을 급히 빠져나왔다. 구불구불 둔덕면의 휘어진 산길을 넘어가면서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의 고충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거제와 통영은 매우 가깝다. 눈 깜짝할 사이에 통영에 도착했다. 바다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서호시장에서 아들이 주차를 하는 사이 우리 부부는 식당을 찾았다. 핸드폰으로 검색하기보다는 걸어서 찾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천천히 걸었다. 다행히 외관이 깨끗한 식당이 눈에 번쩍 띄었다. ‘海맑은 생선구이.복국' 이라는 식당이었다. 복국도 맛있었지만 생선구이는 더 맛있었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구워주신 그 맛이었다. 아들도 너무 맛있다면서 다음에 또 오자고 했다. 
늦은 점심 후 숙소에 짐을 풀었다. 오래 전 문인들을 만났던 그 숙소, 마리나 리조트였다. 우리는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통영 케이블카를 타로 갔다. ‘통영’하면 누구든 성웅 이순신, 작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회, 꿀빵 등이 생각날 것이다. 갑자기 거제와 통영이 고향인 동인이 생각났다. 통영에서 시를 쓰고 계신 시인님도 생각났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이 장관이었다.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섬과 섬만 보였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섬의 고독을 조금은 읽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미륵산 정상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서쪽 바다가 붉었다. 섬과 섬으로 뛰어내리고 있는 해의 파편이 아름다웠다. 한 폭의 그림인 듯 눈이 부셨다. 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낙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선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나러 갈 때도 저렇게 찬란하구나! 나도 죽으면 저런 모습이 될까? 내일도 오늘처럼 잘 살 수 있을까?” 옆에 있던 아들이 피식 웃더니 ‘죽음’ 이라는 단어가 좀 거시기하다고 눈꼬리를 올렸다. 
“아들, 죽음을 부정할게 아니야. 초월하고 싶다는 거야. 현재에 할 수 있는 것은 놓치지 않고 싶다는 거야.” 아들은 해넘이 사진을 찍다 말고 웃으며 말했다. “네. 어머니 말씀도 맞아요. 그런데 어머니, 오늘 통영에 온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아요. 낙조도 보고 루지도 타고 아버지 손도 오래 잡아보고, 고민도 털어놓고... 어머니, 올해도 건강하셔야 해요.” 나는 아들의 옆모습을 잠깐 바라보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아들이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 통영에 머무는 동안 기분이 내내 좋았다. 이강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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