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주머니 안에서 녹은 초콜릿바 덕에 발명된 전자레인지 
첫 개발 당시엔 레이더레인지로 제작 대형 위주로 쓰여
1967년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소형화하며 본격 보급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전제품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이 가전제품은 어떻게 변화할까. 의·식·주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매달 1편씩 소개한다. 햇살 가득 비추는 휴일 낮에 가볍게 먹는 브런치처럼.  

 

기성 세대에겐 당연시 되어왔던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이젠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어찌어찌 가정은 이뤘지만 워라밸은 요원한 이야기이고, 바쁜 일상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삶이다 보니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은 아니지만 ‘먹는다’는 행위 그 자체는 삶의 커다란 기쁨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일명 ‘소확행’이다. 
그런 유희에 일조하고 있는 물건이 있다. ‘전자레인지’는 힘들게 불을 피우지 않아도 빠르고 위생적으로, 그리고 간편하게 음식을 데워 먹을 것을 제공한다.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경제적이고 편리한 간편식이 시장의 대세가 됐고, 전자레인지는 혼밥 필수 주방아이템으로 등극했다. 
필자에게도 전자레인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15년 전 네덜란드 유학시절,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하는 한국마트는 겨울철에만 아주 잠시 고구마를 팔았다. 하루는 마트 종업원이 큰 고구마 하나를 반으로 잘라 전자레인지에 넣어 단 몇분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고구마를 필자에게 건네주었던 적이 있다. 아직도 그때의 그 감동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전자레인지 때문에 감동받기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석유곤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불 피우는 것도 쉽지 않았고, 쓰고 나면 부엌 천장과 코끝에 까만 그을음을 남겼다. 액화천연가스(LPG)가 보편화되면서 석유곤로는 가스레인지에 자리를 내어주었고, 1980년대 부엌 풍경은 2구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으로 대표됐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를 출시하면서 부엌의 전통적인 조합이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자레인지는 불꽃이나 열선 없이 음식물을 데워, 미래에서 온 조리기구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연탄, 석유, 가스 주방기기보다 조리시간이 빠르고 에너지 효율이 강점으로 꼽혔다. 가스레인지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요리를 대체할 수는 없었지만 앞선 조리기구로 인식되어 가스레인지에 ‘가스’ 대신 ‘전자’를 붙여 전자레인지로 불리기 시작했다.(참고로, 북한에선 ‘전자가마’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 당시, 시판된 전자레인지의 가격은 직장인 평균월급(20만원)의 배인 40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그 시절 최고급 럭셔리 가전이었던 셈이다. 
전자레인지는 사실 우연히 탄생했다. 제2차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0년 영국 버밍햄대학에서는 독일군 전투기와 로켓을 탐지하기 위해 레이더 성능 강화용 마이크로파 에너지 발생 장치인 특수 진공관(마그네트론)을 발명했다. 이후, 퍼시 르 스펜서(Percy Spencer)라는 엔지니어는 레이더에 들어가는 진공관을 생산하던 군수업체 레이시온(Raytheon)에서 일하고 있었다. 진공관 성능을 시험하던 중 우연히 그의 주머니 속에 있던 초콜릿바가 녹아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에 다시 넣은 옥수수가 마이크로파에 팝콘처럼 튀겨져 나온 것을 발견하면서 전자레인지가 인류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전자레인지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파는 FM 라디오의 약 30배 정도의 주파수를 가진 마이크로파로, 물질에 함유된 물 분자끼리의 마찰을 발생시켜 발열이 일어나는 원리로 작동된다. 마이크로파는 금속에 닿으면 마찰간섭이 일어나 불꽃이 일고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품과 같이 수분을 함유한 재료에 닿으면 수분에 흡수되어 발열현상을 일으킨다. 흥미롭게도 물이 얼음으로 되었을 때는 그 결정 구조 때문에 마이크로파를 조사(照射)해도 제대로 가열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얼어있는 식품을 해동할 때 시간이 한참 걸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전자레인지가 나온 것은 아니다. 1947년 레이시온은 이 기술을 활용한 레이더레인지(Radarange)를 제작해 미국의 대형 레스토랑에 상용화 모델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자레인지는 냉장고 보다 크고 무겁고 또한 가열된 진공관을 식히기 위해 별도의 냉각수 공급장치까지 달려 있었다고 한다. 초기 제품들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으로 항공사, 열차, 대형 레스토랑이 레이더레인지의 주 고객이었다고 한다. 1967년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한 전자레인지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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