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출간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연합뉴스
김진영 편집이사

울산은 질곡의 세월 동안 조국 전 장관을 감싸준 곳
법무장관 시절 수사 회고록 나오자 민주당 자중지란
찬반 여론 확산할수록 여권내부 대선 악재될까 우려

그와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울산의 모 정치인을 후원한다는 그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과거지사들을 두루뭉술하게 흘렸다. 울산은 그에게 남다른 곳이다. 그는 울산대 교수로 재직하던 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당시 울산대 총장으로 있던 이상주 박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돌아와 다시 대학에 울타리를 칠 수 있었다. 그 질곡의 세월 동안 그를 감싸준 곳이 울산이었다. 그와 나는 한동네에서 자랐다. 이른바 죽마고우다. 두 살 어린 동네 후배지만 학교는 같이 다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네 형들이 모두 학교에 가자 부모님을 졸라 입학의 문턱을 넘었다고 한다. 예사로운 고집이 아니다. 그런 고집을 가진 그는 정치판에 발을 담그기 전까지 깎아 놓은 밤톨처럼 신선했다. 강남좌파, 올드보이처럼 낯선 단어가 조합됐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의미로 다가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적어도 10년 전에는 그랬다. 조국 이야기다. 
그가 책을 냈다. ‘조국의 시간’이란다. 책이 나오자 정치권이 온통 조국 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아직 회고록을 내기에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 보이는 나인데도 그는 책을 냈다. 책이 나오기 전, 예고편까지 준비한 비장의 카드다. 어쩌면 4·7 재보선 참패가 조급증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나자 여권에서는 문재인 정권 중반에 벌어진 ‘조국 사태’가 재보선 패배의 핵심 요인으로 회자하며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사전 주문이 폭주한다는 소식에 사과는 뒤로 숨고 공식 입장은 우왕좌왕하며 여의도를 배회했다. 
한때 선두를 치고 나갔던 대선주자는 마음이 급했다. 한 인사는 조국수호단에 가입해 놓고 보는 안전망을 쳤고 또 다른 인사들은 삐쭉거리며 뒤를 따랐다. 대선판에 나간다는 제스처를 무수히 해봐도 지지율은 옴짝달싹 하지 않는 인사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일편단심 조비어천가의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첫 주자는 이낙연 전 총리다. 그는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검찰개혁 완성에 힘을 바치겠다”라고 공언했고, 정세균 전 총리는 “공인과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입은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가슴이 아린다”며 감성의 잉크를 떨어뜨렸다. 조국과 일심동체인 양 한 시절을 보낸 추미애는 버전을 업그레이드했다. “조국의 시련은 검찰개혁이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됨을 일깨우는 촛불 시민의 개혁사”라는 다소 민망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스스로 격을 올리려고 무거운 단어를 절벽에 매달았다. 
권좌에서 다소 자유로운 여권 인사들은 앞다투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다. 조응천 의원은 SNS에서 “우리 당이 다시 ‘조국의 시간’이라는 수렁에 빠져들 수 없다”고 대못을 쳤고 박용진 의원은 “‘조국의 시간’은 조국 본인의 권리지만 민주당의 시간은 민주당의 의무”라고 굵은 선을 그었다.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민주당은 국민 민생을 살리러 가야 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한다”며 “이 (조국 사태)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조국의 시간에 함께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신경민 의원은 “본인과 가족들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정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책으로 내야 할 만큼 긴박한 일이 있었는지를 의문”이라며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시점에서 조국 전 장관이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거론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문제를 제기했다. 윤석열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눈사람이 된다는 세간의 평을 제대로 읽은 서평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회고록을 보면 출간의 의도가 읽힌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을 위리안치된 극수(가시덤불에 갇힌 죄수)로 규정하고 자신의 가족을 멸문지화를 당한 상태로 설정했다. 특히 그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인용하며 주인공 당테스의 외침이었던 “견디며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를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로 포장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부분은 이른바 ‘조국 논란’ 핵심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친여진영을 몰락하려는 음모로 치환하고 급기야 스스로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법무장관으로 있을 때 빚어진 검찰과의 충돌 당시를 “(검찰이)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잡아 족쳤던 상황”과 같다고 했다. 또 “검찰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무력시위’가 시작되었다면서 검찰의 공격에 무릎을 꿇으면 이후 누가 법무부 장관으로 오더라도 검찰개혁은 무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표창장 위조에 대한 해석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결했다. 표창장 위조 파일이 나왔다는 방송 보도에 대해 “지난 2009년 5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라고 풀었다.
50대 후반에 회고록을 내야 하는 삶도 불행한 삶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흘러나온 내용은 회고라기보다 한풀이, 항변, 모욕에 대한 앙갚음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어찌 됐든 복잡하게 된 건 민주당 쪽이다. 앞뒤를 다투며 빠르게 반응하는 자들은 벌써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들이 배워야 하는 쪽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은 영악하다. 영악한 정치인은 숨을 줄 안다. 성남시장 시절에는 관종(관심종자) 수준의 빠른 입으로 설화에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탑2 아닌가.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화가 판세를 덮어버린다는 사실을 제대로 익혔다. 나오자마자 4쇄에 들어갔다는 ‘조국의 시간’은 당분간 완판 행진이 예상된다. 판매량이 늘수록 조국의 시간은 더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판매 부수 만큼 조국으로 인한 여론의 벽 또한 견고하게 쌓여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견고하게 쌓인 그 벽이 결국 무엇을 차단하게 될지 조국이나 여권 모두가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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