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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통신] 울산박물관 10년과 동아시아 인류사 1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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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영 편집이사
  • 승인 2021.06.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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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0년을 맞은 울산박물관 전경.
김진영
편집이사

한반도 선사문화 보고, 박물관 없어 타지로 유출
검단리 등 선사문화가 쏟아지자 박물관 건립 시동

동아시아 인류사 담아내는 콘텐츠 개발 주도해야

딱 10년 전이다. 울산대공원 옆 허허벌판에 울산박물관이 들어섰다. 반구대암각화를 벽면에 새긴 웅장하고 멋스러운 건축물이었다. 울산박물관의 필요성은 민선시대 초기부터 논의됐던 숙원이었다. 논의 차원에 그치던 박물관 건립사업은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경주와 김해로 대표되는 신라와 가야문화의 틈새에 낀 울산이기에 독창적인 박물관을 갖지 못했다. 울산문화권은 확실히 경주나 김해와 다른 독특한 문화유전인자가 깔려 있었지만 지역의 힘이 없다보니 언제나 후순위 사업으로 밀렸다. 유물과 유적의 규모로 보면 당연히 문화재청이 주도하는 국립박물관 건립이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는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지역 여론이 들끓고 검단리와 중산리 등에서 선사유적이 대거 쏟아지자 정부부처는 겨우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런 세월이 지나간 뒤 지난 2003년 하반기에서야 박물관 건립 시행계획이 만들어졌다. 다시 몇 해, 사업비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또 걸렸다. 가까스로 지난 2009년 1월 첫 삽을 떴다. 개관 소식이 전해지자 울산의 토박이들과 울산출신 인사부터 울산의 유적과 유물을 파고 붓질했던 사람들과 기관이 유물 기증에 나섰다. 그로부터 10년, 11만5,000여점의 유물이 모였다. 

울산은 특별한 곳이다. 한반도 동남쪽 어귀에 자리했지만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고래바다 물길의 경계에 있고 육지부에서 가장 먼저 햇살을 맞이하는 첫 자리에 터를 잡았다. 고래바다를 품은 동해의 광활한 물결과 장엄한 쪽빛이 대륙과 경계를 이루는 땅이 바로 울산이다. 그 땅은 그냥 그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해양을 떠돌던 인류와 대륙에서 빛을 찾아 남으로 향하던 인류가 절묘하게 만난 지점이 울산이다. 그 인류 이동의 타임캡슐이 암각화에 새겨졌고 무수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힌 땅이 울산이지만 박물관 하나 없었다. 바로 그 박물관이 10년 전 울산에 들어섰다. 한참 늦은 건립이었지만 울산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대한민국 어떤 곳의 박물관보다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공해도시로 이미지가 굳어버리고 굴뚝도시로 더럽혀진 울산이 한반도의 오래고 먼 동아시아 인류사가 새겨진 곳임을 알릴 공간이 들어선 셈이다. 
흔히 박물관을 이야기하면 그냥 오래고 먼 옛날의 것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이해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박물관은 시작부터 전시의 공간이 아니라 학문을 논하던 공간이었다. 박물관의 기원이 알렉산드리아 궁전 무세이온(Mouseion)이라는 점도 그 근거다. 이집트인들은 과거의 유물을 옮겨 옛사람들의 지혜와 그들의 예술세계를 공부하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세웠다. 그렇다. 박물관은 죽은 영혼과 죽어 있는 물상을 안치하는 장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파리에 가면 루브르박물관을 찾고 히드로 공항에 내리면 지도에서 대영박물관부터 찾아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울산에 온 사람들이 공장견학보다 박물관을 첫 행선지로 삼은지 이제 10년이다. 굴뚝도시 산업수도 울산을 찾은 이들이 울산박물관을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울산에 오면 굴뚝의 역사, 산업의 역사가 즐비하리라는 상상을 하겠지만 박물관에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울산은 미안하지만 한반도 인류의 기원이 깃든 땅이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울산박물관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울산은 선사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다. 그 증좌는 서생면 신암리, 장현동 황방산, 지석묘가 있는 언양읍 서부리와 중산동 능선, 태화강변 상류를 더듬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울산의 선사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196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이뤄진 울주군 온양 삼광리 유적이 최초다. 이후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진 유적은 110여 곳이고, 출토된 유물만 6만여 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유물을 보관·관리할 박물관이 없었던 이유로 출토 유물의 대부분이 외지로 빠져나갔다. 그 수량은 대략 전체 출토 유물의 80%에 육박하는 4만7,000여점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쉽게도 신암리 출토 신석기 유물과 굽다리 항아리, 대대리 하대 유적의 청동솥, 중산동 유적의 오리모양토기 등 보물급 유물은 모두 외지로 유출됐다. 울산에서 발굴된 출토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중앙, 김해, 경주 등 세개 국립박물관과 영남 지역 각 대학박물관 등 모두 24개 기관이다. 모두가 울산에 박물관이 없던 시절에 벌어진 발굴의 결과였다. 
무엇보다 울산은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벼농사의 흔적과 환호 주거지가 쏟아져 나온 땅이다. 왜곡의 달인인 일본 역사학계가 울산 옥현 벼농사 유적이 발견된 이후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검단리 환호유적과 중산리 고분군은 선사시대 울산이 어떤 문화적 토양을 가진 땅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울산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울산에는 한반도 초기 제철 유적이 54곳이나 널려 있다. 철기제조의 유적과 건물지, 당시의 경작지 등 초기 철기시대의 종합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울산이다. 이제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울산의 문화유산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수한 선사의 흔적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를 살필 시점이다. 반구동 항만유적이나 중산리 고분군 일대, 검단리 환호 유적 등 무수한 선사의 증좌를 덮고 뭉갠 지난 시절이 부끄럽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박물관 10년이라는 일천한 역사를 가진 울산이지만 1만년 이상의 선사문화 1번지라는 정체성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검단리와 중산동 일대를 선사문화 관광벨트화하고 그 이야기를 엮어 동아시아 인류사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바로 그 콘텐츠를 치밀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10년을 맞은 울산박물관의 새로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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