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편집이사

경찰 사칭은 누구나 했던 관행이라는 김의겸
‘부동산의 귀재’ 다운 말 바꾸기 달인의 궤변
왜곡된 시각으로 언론개혁 외친 배경이 씁쓸 

기가 막힌다. “기자가 수사권이 없으니까 경찰을 사칭한 것”이고 “좀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라니,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원 입에서 나온 말이란다. 그런데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아마 제 나이 또래에서 한두 번 안 해본 사람(기자)이 없을 것”이라고 사족도 달았다. 단 시간에 8억을 벌어들인 부동산의 귀재, 김의겸 의원 이야기다. 그리고는 경찰을 사칭한 모 방송 기자들을 고발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이걸 고발한 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대통령 후보로서 무제한의 검증을 받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기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건가”라고 쭈뼛거렸다. 
김의겸이 누군가. 촛불정권의 첫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그는 한겨레 기자 출신이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그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이 신호음을 내기 시작할 무렵이다. 딱 3년 전 여름이다. 재개발 사업 마무리 단계의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뉴타운이 먹잇감이 됐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은 재개발 대상 건물을 25억7,000만원에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직에 오르면서 본인이 신고한 재산의 두 배에 달하는 16억원의 빚을 지고 부동산 투자를 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김의겸은 대변인답게 변명으로 일관했다. “노후 대책용으로 구매한 것이며 직접 살면서 세도 놓을 예정이지 투기가 아니다” 그의 변명은 더 큰 문제로 돌아왔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본인 연봉의 절반가량을 이자로 날릴 만큼의 무리한 대출까지 한 투자를 투기가 아니라고 강변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김의겸은 운동권 특유의 감성 호소법으로 작전을 바꿨다. “결혼 이후 30년 가까이 집 없이 전세를 살았다. 지금은 청와대 관사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집을 사자고 계획을 세웠다.” 이 말이 또 문제가 됐다. 전세보증금까지 투기에 올인하고 관사를 이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답이 없자 그는 청와대를 떠났다. 마지막 모습은 참담했다. “노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서 (흑석동 건물을) 샀다”고 주장하던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고 “(건물 매입은)아내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라며 “자신이 알았을 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아내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김의겸의 이 말도 거짓이었다. 본인이 직접 건물의 계약서류에 서명했다는 부분이 드러났다. 이뿐이 아니다. 배우자의 대출에 담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본인이 은행에 반드시 가야 하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 그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 계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 4.15 총선 후보자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당내 압박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던 김의겸은 열린민주당 후보로 환생했다가 김진애 의원의 이해할 수 없는 의원직 양보로 꿈에 그리던 국회의원이 됐다. 김의겸의 첫 일성은 놀랍게도 ‘언론개혁‘이었다. 그는 “대통령을 물어뜯거나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사가 너무 많다”며 “언론개혁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보고 싶다. 모난 돌이 되어 기꺼이 정도 맞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의 언론 지형이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된 보도가 난무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그가 ‘정치 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모 방송의 ‘00 뉴스공장’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그마나 조금이라도 균형을 잡아보려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뜬금없는 균형론을 이야기했다. 
장황한 이야기였지만 김의겸 문제는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흔히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문재인 정부의 엘리트 집단을 조롱하지만 정작 조롱의 대상들은 스스로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를 풀어 쓸 줄 모른다. 김의겸의 경찰사칭 발언이 알려지자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저도 (SBS에서) 20여년 기자 생활을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이 마치 대부분 언론계의 관행이었다는 말은 대단히 부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김의겸은 필자와 동시대를 사는 언론인이다. 비슷한 시기에 수습기자를 거쳤고 경찰기자 생활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했다. 서울의 기자들은 경찰사칭이 흔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몇몇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답은 엉뚱하다. “무슨~ 경찰이 기자를 사칭했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김의겸의 말처럼 경찰을 사칭한 기자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30년 전 경찰서의 새벽시간은 기자들의 시간이었다. 밤사이 사건사고나 관내 동향이 팩스나 전통문으로 흩어져 있는 새벽의 경찰서는 먹잇감이 될만한 하나의 정보라도 더 챙기려는 기자들과 이를 감추려는 경찰이 기싸움과 숨바꼭질을 하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경찰은 기자를 똥파리로 불렀고 기자는 경찰을 짭새로 불렀다. 묘한 관계인 그 역학구조는 알권리와 은폐의 욕구가 긴장관계로 유지되던 시절이었다. 김의겸은 그런 시절, 경찰을 사칭해 취재를 했구나 싶었지만 지인들은 한결같이 경찰을 사칭하는 것보다 기자라고 밝히는 것이 취재하기에 더 편한 일 아니냐고 갸우뚱했다. 필자도 궁금하다. 같은 시대를 산 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편이 한 것은 무상연애나 형수욕설이나 위로장학금이나 특혜휴가 등등 그 어떤 것도 그럴 수 있다는 내로남불이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궤변이 폭염보다 두려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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