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영화연구가

오랜 시간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상의 특별함’ 
영화 ‘마파도’ ‘국제수사’ ‘국도극장’에 잘 담겨져 있어
복잡한 세상 힘겨운 삶이지만 순간의 특별함 느껴보자

휴일 오후다. 참으로 오랜만에 제법 먼 길을 나선다. 평소와 달리 직선으로 쭉 이어지며 시원스레 뻗은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린다. 한참 만에 역 앞에 다다르며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은 채 순순히 목적지를 찾았다. 짧은 용무를 마치고 다시금 왔던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 때 그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이다. 이는 곧 스스로 선택한 길 위의 레이스인 셈이다. 슬그머니 제 모습을 드러내며 제각기 향연을 펼쳐 보이는 자동차들에 눈도장을 찍으며 여유를 만끽하기로 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무심코 하늘빛을 살피는 찰나에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무언의 존재가 있다. 고요한 쪽빛 하늘을 배경 삼아 두둥실 두리둥실 피어오르는 새하얀 뭉게구름이다. 어쩜 저리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왜 자꾸만 높아지며 아련하게 멀어져만 가는지 알고 싶다. 물론 묻고 또 되물어도 뚜렷한 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에겐 지독한 가을 앓이가 일상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뉴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벌써 높아져만 가는 하늘에 두근 반 세근 반 가슴 속에서 방망이질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를 두고 나른한 일상이 불러온 허허로움의 형상이 아닐까 했지만 이젠 좀 달리 생각하고자 한다. 타고난 감성이 전하는 선물과도 같은 특별한 일상이라고. 
인생 여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좌충우돌(左衝右突),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시간을 보낸다 할 수 있다. 그 무게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코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주체 또한 남이 아닌 나 자신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에 예민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모든 일이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마음의 터를 다독다독하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자. 마치 불현듯 특별한 영상으로 투영될 달곰쌉쌀한 추억들과 마주할 것이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외가에서 지냈던 시절의 이야기가 꼭 이를 증명해 보이듯 오버랩되며 떠오른다. 족히 십리는 됨직한 산길을 외할머니와 함께 걷고 또 걸어서 오일장에 다다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햇살이 이글대는 한여름이었는데 눈에 드는 모든 풍경이 신기하기만 했다. 장터 먹거리로 한사발 뚝딱 해치웠던 잔치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미각 발견이었다, 왁자지껄했던 장터 분위기도 잊히지 않고 어제 본 듯 선연(鮮然)하기만 하다. 더불어 나이 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 막내 외삼촌이 태워 준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달리다 바위에 부딪혀 놀랐던 일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마음속에 늘 그리움으로 품고 지냈던 산촌 외가에서의 일상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리움으로 저장돼 있다. 이에 몇해 전 무심코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개발로 마을이 사라지고 도로가 뚫려 있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금 오일장이 열리던 그 장터로 향했다. 다행히도 장터에서는 그 시절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오늘은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담은 영화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추창민 감독의 데뷔작 《마파도: Mapado, Island of Fortunes》(2005·한국)로 조폭들과 할매들이 함께하는 일상을 그렸다. 조폭보다 무서운 다섯 할매와 왕년에 좀 놀았다는 서울촌놈의 우여곡절 일상을 보여 준다. 이는 바로 로또 복권으로 빚어진 사건이다. 
다음으로는, 김봉한 감독의 《국제수사: The Golden Holiday》(2020·한국)로 필리핀으로 인생 첫 해외여행을 떠난 강력팀 경장 홍병수의 일상을 그렸다. 이는 충청도 대천의 소소한 경찰서 형사가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글로벌 범죄에 휘말린 사건으로 ‘토토명: 진실 혹은 거짓’으로 종결된다. 
마지막으로는, 전지희 감독의 《국도극장: Somewhere in Between》(2018·한국)으로 만년 고시생이 위안을 찾은 고향에서의 일상을 그렸다. 서울살이에서 벗어나 고향에서 위안을 찾아가는 청년 기태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 준다. 이는 곧 ‘잘 지내? 고향이 내어 주는 위로 한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참으로 단순한 이치로 포장된 무형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땐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일상들이 그러하다. 특히,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살이에 힘겨운 삶을 꾸려야 하는 이들이 많은 세태가 무척이나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순간순간이야말로 특별한 일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김정수 영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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