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 발표 122년 됐지만 양성평등 요원
 성차별 여전함에도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아
‘성평등’ 특정 性 위한 것 아닌 모두를 위한 것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9월의 첫주는 양성평등주간이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이 발표된 9월 1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뒤 2020년부터는 양성평등주간을 종전의 7월이 아닌 9월로 변경해서 기념하고 있다. 122년 전인 1898년 9월 1일 평범한 여성들인 이소사(소사: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와 김소사의 이름으로 작성된 ‘여권통문’은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궐기로 시작된 ‘세계 여성의 날’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으로,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권통문이 발표된 지 122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여성발전기본법’을 전면 개정한 ‘양성평등기본법’을 기반으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바탕으로 성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없애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 모두가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성평등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엔 우리 사회는 이미 성평등하기 때문에 성평등을 위한 정책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성평등하지 못하다는 증거는 여전히 많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를 보이고 있고 일하는 여성은 더 많은 시간 일하면서 남성의 평균임금보다 더 적은 평균임금을 받고 있다. 또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아이 돌봄의 부담과 함께 고용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젠더폭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이나 스토킹범죄, 데이트폭력에 대한 뉴스기사는 근래 들어 안타깝게도 더욱 자주 접하고 있다. 피해자 다수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성평등에 대한 발전적인 고민이 아닌 여성가족부 폐지 논쟁, 한 국가대표선수의 페미니즘 논란 등으로 성평등 사회를 위한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문제로 성평등 문제해결을 위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이고 예산은 모두 페미니스트를 위해 사용된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남성혐오자이다 등의 프레임에 갇혀 성차별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공무원 분야에서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를 통해 수혜를 받는 사람은 남성이 더 많다는 ‘사실’, 여성가족부 예산에서 많은 부분이 청소년, 돌봄 지원, 다양한 가족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들은 무시되곤 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이 살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상대의 성(性)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표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젠더갈등과 세대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 성차별적 인식과 관행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남성’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성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약자이면서 또한 강자이기 때문이다.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가장의 무게가 지워진 사람, 폭력 피해에 노출된 사람, 노동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 아이를 함께 키워야 하는 사람을 위한, 즉 모두를 위한 것이다. 

올해 양성평등주간의 슬로건은 ‘더 좋은 세상, 성평등을 향해’이다. 성평등은 성별에 따라 가정이나 학교, 직장, 사회에서 차별받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을 이루는 여성, 남성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와 참여의 확대를 통해 여성과 남성이 상호존중하고 포용하는 더 좋은 세상,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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