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가 황금같은 골을 넣고 동료선수들에 앞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달려가 안기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때 처음 볼 수 있었던 색다른 풍경이었다. 
스승의 그늘은 한발 물러서서 밟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히딩크가 아버지 같고 스승인 것만으로도 그러한데 하물며 외국인이 아닌가. 세계 열강을 차례로 물리치고 4강에 오른 비결을 물었을 때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순박해 내 말을 잘 들었다”고 했다. 감독 경력이 풍부했던 그의 비교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기득권이나 인지도·인맥 등 선수 선발에 내재하기 마련인 그동안 우리들의 관행들을 깨고 과감히 순수한 원점으로 돌려 놓았다는 얘기다.
그는 선수들을 ‘나이스 가이스’라고 불렀다. ‘가이스’는 서양에서 제 자식이 귀여워 부를 때 ‘놈’자를 붙이듯 지극히 친밀하지 않고는 부르지 않는 애칭이다. 
‘무엇이 한국선수들을 그렇게 미친 것처럼 뛰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치도 불고기도 아닌 다른 무엇이 있다’ ‘저토록 몸을 아끼지 않고 뛰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등 외국 언론들의 의문에 답할 그 ‘뭣’이 있었다.
인격을 무시하게 마련인 강훈 때도 선수들을 반드시 이름으로 불렀다. 부모와 같은 배려와 격의를 없애는 조크와 유머를 아끼지 않았던 그를 우리 축구 선수들은 ‘할배’라 부르며 따랐다.
유럽축구는 체력, 남미축구는 기량으로 세계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한국팀은 체력도 기량도, 그렇다고 투지만도 아니었다. 오직 분골쇄신 토록한 ‘할배’같은 친화(親和)가 그렇게 만들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신화의 주인공 거스 히딩크 감독(75·네덜란드)이 지난 10일 “이제(지도자 일을 포함해) 모두 끝내려고 한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명장 히딩크’는 한·일 월드컵 이후에도 호주·러시아·터키·네덜란드 등의 대표팀을 이끌며 경력을 이어왔다. 그는 지난 5월 코로나19에 걸려 네덜란드 퀴라소팀을 지휘하지 못했다. ‘할배’ 히딩크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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