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0년째 (구)오천마을에 살면서 입은 공해 피해를 설명중인 이석순 씨  
 
   
 
  ▲ ▲ 석유화학단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해를 가리키는 (구)오대마을 박영석, 김묘선씨 부부  
 

두 마을을 합쳐도 7가구 밖에 안되는데... 여전히 이주는 '깜깜'
매캐한 공해로 후두암까지 이어져 매일 '공포'
군청 공무원도 "소 죽 끓이는 줄 알았다"며...
“몇년이나 더 살겠노”, “차라리 죽었으면 세상 편할텐데...”

공해 속에 방치 된 과거 오대·오천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60년이 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해이주사업’의 탁상행정이 있었다. 1960년대 울산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평화로웠던 그들의 삶은 뒤엉키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진행 된 이주사업. 그들은 1992년 울산대학교의 환경오염도 조사에서 ‘주거지역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한 줄기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잔인했던 선긋기에 이 마을들은 오래 전 이름을 잃어버리며 현재 신촌마을 주민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여전히 ‘오대마을, 오천마을’ 주민이라 설명한다.

 

 

 
 
  ▲ ▲ (구)오대마을 ‘안산’에서 보이는 석유화학단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해.  
 

산업수도의 위상을 높이며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은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단 7가구는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중이다. 화려한 산업도시 울산의 어두운 이면이다. 1998년 환경부는 아황산가스, 불화수소 등 오염물질이 감소되고 있어 지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때문에 울산시는 수십 년간 이들을 공해 속에 방치했고 그들은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오대·오천마을 주민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 ▲ 이주를 간절히 원하는 (구)오대마을 박영석, 김묘선씨 부부.  
 

김묘선(83) 씨 부부가 살아가는 용암리 오대마을 ‘안산’. 집 앞 마당에 서있기만 해도 빼곡히 보이는 공단의 모습. 이곳은 과거 오대마을 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전부터 다른 집들과는 조금 떨어져있었고 그 때문에 공해이주사업 당시 제외됐다. 하지만 공장의 매캐한 연기가 굴뚝을 통해 뿜어 나오면 이곳의 농작물도 힘없이 시들어버린다. 이곳에는 6가구가 남겨졌지만 모두 떠나버렸다. 이제 남은 집은 단 2가구다. 도망치듯 나가버린 흔적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 그들은 그곳을 ‘암이 가득한 동네’라고 했다. ‘안산 마을’에 남겨져있는 박영석(83) 씨도 지난 해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죽을 때 다됐지만 이주하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며 이주를 간절히 원했다. 이주와 죽음을 견주는 현실. 울산시의 방관이 만들어 낸 잔혹함이다.

   
 
  ▲ ▲ (구)오대마을 ‘안산’을 떠나버린 사람들의 흔적.  
 

오대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천마을. 공장 사이로 들어가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을 들어가니 작은 다리 하나를 두고 마을이 모습을 보였다. 기존에 형성되어있던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몇 가구가 없다는 탓에 이들은 이주대상에서 빠졌다. 단, 300~400m 차이다. 새하얀 매연과 시끄러운 기계소리. 지금까지 공해와 함께 살아 온 이석순(84) 씨. 그는 “오천마을에서 함께 살아 온 딸이 공해 피해를 겪고 살다 암으로 죽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에는 단순한 공해 피해가 아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껏 일궈온 밭을 소개해주겠다며 밖으로 나선 이석순 씨. 아픈 다리를 붙잡고 나와 “아직까지도 콩도 말라죽고 깨도 말라죽는다”며 좋아진 게 없다며 탄식했다. 오천마을에는 약 130가구가 거주했지만 지금은 5가구만 남겨져있다.

   
 
  ▲ ▲ 일반산업단지조성으로 파괴 위험에 놓인 용암리의 유일한 차단녹지.  
 

시간이 흘렀지만 해결되지 않는 비극. 주민들의 삶을 외면한 채 울산시는 또다시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울주군 용암리 일대에 일반산업단지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용암리를 공해로부터 막아주고 있는 유일한 차단녹지마저 파괴하려 하고 있다.
오대·오천마을이 속해있는 용암리 주민들을 공해로부터 지켜내고자 쓸쓸히 외치고 있는 이장 박진완(69) 씨. 그는 “군청 공무원이 현장에 와서 새하얀 공해를 보고 소 죽 끓이느냐고 물어봤지만 그게 전부”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산업화에 묻혀 지내던 사람들. 공공의 무관심과 방관은 여전히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과거 ‘공해이주사업’은 끝이 났지만 아무도 낙관해서는 안 될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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