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9월~작년 5월 산재사망사고 첫 공판
“예견 어려웠다” “안전조치 다했다”…노동자에 책임 돌리기도
  고용노동부 적발 ‘635건 안전조치 위반’ 혐의는 이견 없어
  검찰, 혐의 인정 한영석 대표이사에 벌금 2,000만원 구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울산본부·금속노조 ‘엄정 처벌’ 촉구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울산운동본부와 전국금속노동조합은 27일 오전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심현욱 기자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현대중공업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법정에 섰다. 이들 대부분은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적극 부인했다. “사고를 예견하기 어려웠다”거나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는 취지였는데, 일부는 “하청업체가 안전시설물 설치를 요청하지 않았다”거나 노동자 개인 일탈이 사고 원인이 됐다며 책임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27일 울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형사3단독(부장판사 김용희) 심리로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사고 첫 재판이 열렸다.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4건의 산재 사망사고와 고용노동부 안전점검에서 적발된 635건의 안전조치 위반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또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4건의 산재사고는 △2019년 9월 20일 추락한 중량물에 하청 노동자 압착사 △2020년 2월 22일 작업 발판 조립 작업 중 하청 노동자 추락사 △2020년 4월 16일 수중함 발사관 조정 작업 중 원청 노동자 발사관 문 협착사 △2020년 5월 21일 용접작업 중 아르곤 가스 배관 내부 하청 노동자 질식사 등이다.

이날 재판에는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 중인 1명을 제외한 15명(법인 3곳 포함)이 출석했다.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와 조선·해양플랜트·특수선 등 사업부별 전·현직 본부장 3명, 안전담당 직원 3명, 하청업체 대표 3명과 현장소장 2명 등이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 대부분은 4건의 개별 산재 사망사고의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작업 공정상 필요한 안전조치는 충분히 다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2020년 2월 추락사 사고와 관련해 “작업표준에 추락보호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된 작업 현장이 아니고, 이같은 시설이 필요하다는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하청업체도 별다른 요청이 없었다”면서 “안전대를 설치했고, 당시 작업자가 안전대에 고리를 걸지 않은 게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사고 현장은 이미 모듈과 연결돼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하는 개구부”라며 “안전대 걸이만으로 안전조치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곧바로 반박했다.
피고인 측은 이어 아르곤 가스 배관 질식사와 관련해 “배관 내부로 작업자가 들어갈 상황을 예견할 수 없었고, 배관에 대해 적정공기 유지와 환기 등 밀폐 공간 프로그램을 시행하면 아르곤 가스로 진행하던 용접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출입금지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현장의 위험성은 사망한 피해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작업자를 3인 1조로 구성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상황을 알렸더라면 나머지 2명이 충분히 지켜볼 수 있어 감시인을 지정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다툼의 여지없이 피고인 측이 혐의를 인정한 것은 고용노동부의 안전조치 위반 635건 적발(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뿐이었다.

현대중공업 측 변호인단으로는 울산지검 검사장 출신 법무법인 무영의 송인택 변호사와 차장검사 출신 법무법인 청림의 최성남 변호사 등 ‘전관’들로 꾸려졌는데, 재판 내내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우선 변호인 측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목록이 개별 산재 사망사고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 적용된 점을 지적했다. 사건마다 기소된 피고인이 모두 다른데, 개별 혐의사실과 관계없는 증거에는 하나하나 부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검찰은 모두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증거로 안전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뒷받침하는 간접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재판부는 한영석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한 만큼 결심을 해달라는 변호인의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이에 검찰은 “현대중공업에서 추가로 발생한 산재사고 2건과 관련해 곧 수사를 마무리해 추가 기소할 예정으로, 사건을 병합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검찰은 한 대표이사에 대해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고, 한영석 대표이사는 최후 변론에서 “회사 특성상 산재에 매우 취약하고, 취임 후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중대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데 드릴 말씀이 없다”며 “안전시스템 내실화 등 산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재판은 쟁점 정리를 위해 11월 29일 오전 11시 다시 열릴 예정이며, 이날 결심공판을 진행한 한영석 대표이사는 모든 재판이 끝난 뒤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1심 선고를 받게 된다.
이날 재판에 앞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울산본부와 전국금속노조는 울산법원 앞에서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재판이 끝난 뒤에는 한영석 대표이사를 향해 “사람 목숨 값이 2,000만원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앞서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2020년 4월 21일 안전 조치를 다 하지 않아 작업하던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약식 기소된 현대중공업 직원 2명에 대해 검찰은 벌금 200만원을 구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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