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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시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맞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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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
  • 승인 2021.09.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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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길이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달라져
부족함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는 성장
가족·친구 위해 오늘을 소중히 여기시길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박사

이날도 중요한 중간보고회 참석까지 한 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기차에 올랐다. 금요일에는 어김없이 대전으로 돌아간다. 벌써 15년째 변함없는 울총(울산총각)의 일상이다. 정시에 기차는 출발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자리가 맞으신가요?”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객실장이다. “네, 맞는데요.” 떳떳하게 대답하며 얼른 핸드폰을 펼쳐 예매표를 보여준다. 그런데 “벌써 대전 지났는데요.” 웬 이런 날벼락이. 오늘 중요한 과제를 받아들고 기차 안에서 그 일에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니 그만 내릴 곳을 지나친 것이다.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기차 도착 안내방송도 못 들은 탓이다. 

황급히 “다음 역이 어디인가요? 어떻게 하면 되죠?” 되도록 불쌍한 목소리로 간청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음 정차역이 오송역이란다. 친절하게도 객실장은 잠시 작업하더니 열차시간 안내표를 출력해 건넨다. 오송역에서 바로 옮겨탈 기차를 알려주곤 “그 기차 객실장에게 연락해 놓을 테니 그냥 입석으로 가세요”라는 게 아닌가. 게다가 건네받은 안내표 밑에는 펜으로 쓴 메모가 적혀있었다. “#346 객실장입니다. 대전 지나친 고객입니다. 오송에서 대전까지 승차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금요일이라 기차표 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그보단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이렇듯 살다 보면 이런저런 웃픈 해프닝이 자주 일어난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짠한 모습을 종종 본다. 새벽 산책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한 가족이 너무 이쁘면서도 애잔하다. 그럴 때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만 보고 듣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것들은 결국 안 보고 안 듣는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듣느냐에 따라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리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시끄러운 소리가 달리 들리듯.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조금씩은 귀머거리이고 조금씩은 벙어리가 아닌지. 

노년의 징조는 눈에서부터 찾아온다. 신문 글자가 가물가물 보이고, 휴대폰 글씨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노년이 내 곁에 바짝 다가왔음을 눈치챈다. “무슨 해결책이 없을까?” 하고 이리저리 자문을 구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아쉬운 답변만 돌아온다. 전엔 아프면 치료받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젠 아프면 치료받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니 이것 또한 노년의 낌새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지만 노년의 길에 들어서면 묘한 해방감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당혹스러운 노안 체험이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날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며 살아왔다. 그때는 현상 유지는 곧 실패를 의미했다. 그래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맞이할 때마다 좌절감과 자책으로 힘든 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초조하고 조급했던 날들과는 작별이다. 비록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않은 오늘이 찾아와도, 그것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현상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족함은 채워질 때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맛이 더 깊고 진해짐을 깨닫는 내 모습이 참 대견스럽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 세상의 온갖 것에 혼란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려면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혜안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며 행동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삶에도 때론 넘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넘어지는 건 나름 이유가 있다. 넘어져야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운 햇살을 가득히 마음의 창에 담아 아침을 연다. 하루가 길다고 혹은 짧다고 탓하지 말자. 오늘을 내게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 자신은 물론, 나와 함께하는 가족과 친구, 지인도 많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 모든 소중함은 내가 맞이한 오늘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하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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