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울주군 언양공설시장의 낡은 장옥들이 늘어서 있다. 이 시장은 도로 확장 공사가 예정돼 사실상 일부 철거가 불가피한 곳이다.  
 

[이슈분석] 도시계획 도로 부지 위 언양공설시장‧덕하시장의 운명
언양공설시장 장옥 57곳만 영업
郡, 4층 건물 신축 입주‧장옥 형태 유지 정비 추진
상인 반발로 무산…빈 장옥 등 행정대집행도 난항
상인회, 신규 부지 요구…사회적 공감대 형성돼야

울산지역 도시계획 도로 부지 위에 열리고 있는 시장이 있다. 도로 개설 공사가 시작되면 언제든 사라질 처지인 시장들이다. ‘끝’이 예견된 시장 상인들과 지자체는 해마다 갈등을 반복하고 있고, 시설 개선이나 안전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 ‘끝’이 정해진 도시계획시설 위 언양공설시장·덕하시장
도로계획시설상 도로 부지 위의 시장은 울주군의 언양공설시장과 덕하시장 2곳이다.
이중에서도 언양공설시장은 일대 도로 확장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당장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곳이다.
울산시는 2018년 태화강을 따라 이어진 언양읍 남천로 일대 400m 구간을 왕복 8차로 폭 35m로 확장하는 사업 계획을 고시했다. 이 사업 부지 일부에 언양공설시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언양공설시장은 1915년부터 5일장이 형성된 언양알프스시장의 일부다.
5일장이 들어서는 덕하시장도 도시계획시설상 도로 부지에 있긴 마찬가지다. 아직 울산시가 사업 계획을 고시하지 않았지만, 동해남부선 덕하역 개통 등으로 도로 개설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 불법 개축된 장옥, ‘슬럼화’로 기피 대상되기도… 연간 사용료 10만원도 안돼
언양공설시장과 덕하시장은 벽과 지붕만 설치한 ‘장옥(長屋)’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불법 개축으로 이제는 일반 점포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양공설시장에는 총 170여호의 장옥이 구분돼 있지만, 실제 1명이 여러 호실을 차지하면서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영업 중인 장옥은 57곳뿐이다.
이들 장옥은 곳곳이 부서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고, ‘발암’ 유발 물질로 더는 사용하지 않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과 악취, 국밥집 앞에는 사용해도 되나 싶은 공중화장실까지. 활기 넘치는 시장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만 남아있다.
울주군은 관련 조례에 따라 공설시장 사용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하루 1㎡당 40원 수준이다. 2006년 정해진 뒤 단 한번의 인상도 없이 15년째 동결이다. 장옥 1호를 사용할 때 지불하는 연간 사용료는 약 7만원에 그치고 있다. 울주군이 언양공설시장에서 연간 거둬들이는 사용료는 1,5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시장 유지를 위해 일부 기획재정부 부지(도로 예정 부지)를 임대해야 하는 울주군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지난해 지급한 예산은 8,200만원에 이른다.
덕하시장의 장옥은 12곳이며, 군유지에 열리고 있어 별도의 예산부담이 발생하진 않고 있다.

# 언양공설시장 문제 해결 수년째 제자리걸음
시설이 낡으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슬럼화가 이뤄지는 ‘악순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울주군의 고군분투는 2016년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앞서 울주군은 도로 확장을 염두에 두고 언양공설시장 부지 중 도로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30%를 37억1,400만원에 매입했다. 2019년 7월에는 언양공설시장 노후 장옥 정비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통해 4층 규모 건물을 신축하고 57곳의 장옥을 입주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출하기도 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국비 3억원과 시비 2억원을 확보하고 울주군이 예산 20여억원을 편성하기도 했지만, 기존 상인들의 반발로 무산돼 지난해 예산을 모두 반납해야 했다.
올해도 울주군은 불법시설물 1곳과 더 이상 영업하지 않는 장옥 5곳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추진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상인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언양공설시장상인회 측은 “도로확장공사를 앞두고 시장 규모를 점차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 공설시장 존폐 사회적 공감대 필요
도시계획시설상 ‘도로’ 공사는 현실적으로 ‘시간싸움’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결국 언양공설시장이든 덕하시장이든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울주군은 기존 매입한 부지에 ‘장옥’ 형태로 공설시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규모의 언양공설시장 중 실제 영업 중인 장옥이 절반도 되지 않고, 그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불법개축한 상점 형태가 아닌 실제 법적으로 규정된 ‘장옥’ 형태로 다시 정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언양공설시장상인회 측은 신규 부지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최경호 언양공설시장 상인회장은 “시장은 백년대계라는데, 이대로 사라지게 둬선 안된다”며 “시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부지를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상인회 측이 요구하는 부지는 옛 언양터미널 부지 등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지는 미지수다.
울산지역에 남은 ‘공설시장’은 북구 호계시장과 울주군의 언양공설시장, 덕하시장, 남창옹기종기 등 전체 7곳뿐이다. 도시개발 등으로 공설시장은 사라지고, 민간 상가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