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유럽 귀족들은 인공과 자연, 예술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진귀하고 특이한 것들을 수집했다. 수집품들은 따로 마련한 방에 모아 두고 서로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취미가 크게 유행했다. 만약 이 수집가의 유산이 현대로 이어졌다면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도서관 등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이 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것은 33세 때였다. 그는 평생 국보·보물 50점을 포함한 미술품 2,000여점을 수집했다. 일본에 밀반출된 표형주자(瓢形注子)를 파격적 거금을 들여 수집했다. 호암은 자신이 모은 미술품으로 1982년 호암미술관을 열었다. 생을 마감하기 5년 전이다. 
호암의 뒤를 이은 고(故) 이건희(1942~202) 삼성 회장은 2004년 서울 한남동에 리움(Leeum) 미술관을 열었다. 1960년대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세명이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건물 세동을 서로 맞물리게 지어 건축계의 국제적 화제가 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4월 대대로 수집한 삼성가(家)의 국보급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만1,6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은 1,400여점을 각각 기증받았지만 전시할 별도 공간이 없어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키로 했다.
미술관 건립장소를 놓고 전국 각 지자체가 유치경쟁에 나서 혼란스러웠다. 결국 종로구 송현동과 용산 부지가 유력 후보지로 압축됐다. 하지만 최근 시유지여서 공유재산에 해당하는 송현동 부지를 정부가 무상으로 쓸 수 없다는 법제처 법령해석이 나왔다. 이번 법령 해석으로 용산 부지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 고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았다.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추도식은 간소하게 치렀다. 반도체 등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이 회장의 업적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하다. 하지만 그의 미술품 기증은 더욱 빛난 유산으로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미술관 유치를 놓고 헛물만 켠 지자체들이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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