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산업은 ‘농업’이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산업은 지구적 재난의 다룬 영화처럼 ‘먹거리’가 알약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농업은 발전하는 기술을 업고 노동의 해방과 대량 생산이란 목표로 변화해왔다. 4차 산업혁명은 농업의 ‘혁신’신을 불러올 거란 기대를 모으고 있고, ‘스마트팜’은 그 정점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울산에서도 ‘스마트팜’으로 새로운 산업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자신들만의 기술을 갖고 미래 농업에 뛰어든 이들을 차례로 소개해보려 한다. <편집자주>

 

[2022 신년기획 ‘스마트팜’ 신산업을 꿈꾸다]

<1> 농부가 된 반도체 연구원, ‘유팜’ 김덕수 대표
 

영남알프스 산자락 숙박업소 건물 리모델링해 보금자리
‘연중 내내 맛있는 딸기’ 연구… 특허 출원 2건
올해 대량 생산 본격화… 12~14brix 품질 유지
울산서 인력·부지 확보 쉽지 않아 아쉬워

 

   
 
  ▲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스마트팜 기업 ‘유팜’의 외관. 숙박업소를 리모델링해 회사 사무실과 연구공간을 꾸몄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영남알프스 산자락에는 숙박업소들이 밀집해 있는 이른바 ‘모텔촌’이 있다. 왠지 음습한 분위기의 숙박업소들 사이를 지나다보면 색다른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숙박업소인 듯, 아닌 듯 오묘한 외관. 주차장 입구는 ‘뻥’ 뚫려 있고, 전면유리 너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 1층은 영락없는 사무실이다. 3년차 스마트팜 기업 ‘유팜’이다.

  ‘유팜’을 이끌고 있는 김덕수(51·사진) 대표는 반도체 연구원 출신이다. 경기도의 국내 대기업 협력사에서 반도체 기술을 연구했던 김 대표는 2017년 IT회사인 ㈜네모엔텍을 세우면서 울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LED 조명이다. 그 중에서도 식물성장에 필요한 LED 파장을 개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 시간들이 ‘스마트팜’으로 도전하는 데 발판이 됐다.
 

   
 
  ▲ 스마트팜 기업 ‘유팜’의 김덕수 대표가 직접 개발한 센서·제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모니터에는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수소이온농도(pH) △전기전도도(EC) 등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있다.  
 

  2020년 ‘유팜’을 설립한 김덕수 대표는 경매를 통해 울주군의 숙박업소 건물을 낙찰받으면서 지금의 사무실을 차렸다. 수십개의 방으로 이뤄진 숙박업소가 방방마다 여러 작물을 키워보면서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유팜’은 당신을 위한 농장이란 뜻으로 김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최근 들어 지역에서도 스마트팜이 많이 늘고 있는데, 작물 대부분이 엽채류에 치중돼 있다. 비교적 생육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선택한 작물은 과채류, 그 중에서도 ‘딸기’였다. “딸기를 엄청 좋아한다”는 그의 도전은 “맛있는 딸기는 왜 겨울 한철밖에 먹을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2020년 10월께 그는 처음으로 딸기 재배에 뛰어들었다.
LED 조명이란 ‘빛’으로 시작한 딸기 재배 과정은 양액의 비율과 이산화탄소 농도 등 생육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찾는 시행착오로 뒤엉킨 성장기였다.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와 수소이온농도(pH), 전기전도도(EC) 등을 측정하고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센서·제어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냈다. 그 프로그램으로 딸기 묘종을 키워 꽃을 피웠고, 다시 그 꽃이 열매를 맺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하얀 꽃이 보름 뒤에 손톱만한 열매가 되고, 연두색이던 열매가 또 빨갛게 익더라고요.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간 고생한 것들도 생각나서 뿌듯하기도 하고….”

  딸기가 익어가면서 그의 우여곡절 많은 연구과정도 결실을 맺었다. 생육환경 등과 관련해 2건의 특허를 출원해냈다.

 

   
 
  ▲ 스마트팜 기업 ‘유팜’의 딸기 재배 모습. 연구실은 숙박업소를 리모델링한 방에 꾸며져 있다.  
 

  충분한 연구개발을 이뤄냈다는 김덕수 대표의 다음 목표는 대량 생산이다. 올해 안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사시사철 맛있는 딸기’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재배 품종은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설향’이다. 그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딸기의 당도는 12~14brix. 노지에서 키워낸 딸기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유통과정에서 오랫동안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자부하고 있다.
김덕수 대표는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딸기는 미세먼지나 농약 등에서 자유로운, 말 그대로 친환경 딸기”라며 “쉽게 무르지 않아 유통 기간이나 보관도 비교적 오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노리는 시장은 ‘여름딸기’다. 기존 딸기 농가가 겨울부터 초봄까지 상품을 출하하고 있다면, 그는 그 이후인 봄부터 가을까지 딸기 시장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베이커리를 비롯한 디저트류 등 딸기 수요는 사계절 내내 있어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시장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점도 ‘스마트팜 딸기’의 장점이다.
김 대표는 “빛과 양액을 조절하면 당도를 더 높일 수 있고, 출하시기를 조절하면서 열매의 크기도 얼마든지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스마트팜 기업 ‘유팜’이 재배한 딸기. ‘설향’ 품종의 이 딸기는 12~14brix의 당도를 갖고 있다.  
 

  울산에서 스마트팜 기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인력’과 ‘부지’다.

  김 대표가 추구하는 사업 방향은 스마트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품질을 유지·관리하는 ‘소프트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설물 설비를 잘 다루는 인력보단 IT 인력이 필요하다. 울산은 이런 전문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대다수 IT 기업과 인력이 수도권에 모여 있는 이유가 크다. 김 대표는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것을 두고 “너무 외진 곳에 사무실을 차려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있다”면서 “올해는 좋은 사람을 잘 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대량 생산을 위해 필요한 ‘부지’ 확보도 쉽지 않다. 사무실 건물에서 대규모 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규제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의 만만치 않은 부동산 비용을 감당하기란 현실의 장벽이다.

  김덕수 대표는 딸기 생산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 좀 더 다양한 특용·약용 작물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작은 규모로 가정에서 키워볼 수 있는 ‘딸기’ 보급과 재활용플라스틱을 활용한 스마트팜 구조물도 고민하고 있다.
‘농부’를 꿈꾸는 김 대표의 목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규모의 경쟁에도 뒤처지지 않을 ‘특색’을 찾는 것이다.
“자본을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쟁과 그냥 부딪히기만 해선 해답을 찾을 수 없겠죠. 수요가 높으면서도 작물을 더 많이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 확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 합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