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외국인 못 들어와 일손 절대 부족…"농사 포기하고픈 심정"
농촌 임금 급등하자 농산물값 불안에도 영향 미쳐
"임금 상승 인정하고, 장기 대책 마련해야" 목소리도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는 이모(48) 씨는 지난해 10월 한 달 남짓 이어진 오미자 수확을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가 난다.

"7만∼8만원이던 외국인 일당이 코로나19 확산 후 12만원대로 50% 넘게 뛰었어요. 그나마도 택시비라도 쥐여줘야 다시 나옵니다. 수익을 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씨는 지난해 말 현지를 찾아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같이 털어놓으며,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10월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오미자는 육안으로 익은 상태를 살핀 후 열매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따야 해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만 수확할 수 있다. 5∼10명이 한 조를 이뤄 일주일에 사흘가량 일을 한 다음, 다시 열매가 맺으면 수확하는 방식이다.

농작물 속성상 오미자 수확은 짧은 기간에 많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1만㎡ 규모의 오미자밭을 재배하는 이 씨는 "때를 놓치면 (오미자가) 죄다 물러져 못쓰기 때문에 웃돈을 주더라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몰려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주는 곳에 말도 없이 가버리니 일정을 맞출 수 없습니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일당을 더 줄 수밖에 없어요. 12만원보다 더 주면 그땐 적자가 납니다."

◇ "이젠 상전 모시듯 해야"…'귀한 몸' 된 외국인

수확 시기가 집중된 사과 농사도 마찬가지다. 사과 농가들은 문경 지역에 있는 예닐곱 개의 이른바 '인력'(인력알선사무소)에 미리 수확 일정을 알려야 한다. 순번을 정하지 않으면 인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5∼6년 전만 해도 불러 쓰면 말도 잘 듣고 눈치껏 알아서 일했죠. 그런데 지금은 싫은 소리, 잔소리라도 하면 그 이튿날 다른 곳으로 바로 가버립니다. 인력에서는 '일 못 하면 즉시 돌려보내라'고 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죠."

문경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사과 생산자단체 중 한 곳의 회장직을 맡는 김모(65) 씨는 농촌 지역 외국인이 '귀한 몸'이 된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김 씨는 "5년 전만 해도 동네 할머니들을 불러 썼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80대가 넘은 고령이라 힘이 달린다"며 "지금은 외국인력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외국인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문경시는 인구가 1974년 16만 명을 넘었으나, 올해는 약 7만2천 명으로 최고치에서 60% 가까이 급감한 상황이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문경시를 포함한 전국 89곳을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과거에는 주인이 일꾼을 부리듯 외국인들에게 작업을 지시했으나, 지금은 "잔소리도 못 하고 눈치를 봐가며 웃는 낯으로 작업을 '부탁'한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상전 모시듯 하고 고기반찬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에 대형 비닐하우스를 짓고 친환경 방식으로 딸기와 상추, 고추, 깻잎 등을 키워 서울에 내다 파는 양모(62) 씨는 불법체류(미등록) 태국인을 데려다가 숙식까지 제공하며 한 달에 200여 만원을 준다.

불법체류자의 월급(숙식 제공 조건)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170만원 선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 180만원 선으로 오르더니 올해는 20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고 원예작물 농가들은 전했다.

양씨 농장에서 일하는 한 태국인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올해로 3년째 양씨 집에 머물고 있다. 인력 구하기가 힘든 요즘 상황에서 양씨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딸기 수확철에 일손이 급히 필요하면 인력사무소에 연락해 외국인을 불러 쓰는데, 일당이 12만원이 넘어 인건비 부담이 큽니다. 딸기 모종 1천 개면 하나에 600원씩 60만 원이 들고, 하우스 난방비,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수익 내기 힘들죠. 결국 딸기 값을 올려야 하는데, 친환경 재배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나이가 들어 무릎까지 안 좋아진 양씨는 고민 끝에 딸기 농사는 더는 짓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양 씨가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딸기 모종촬영 양태삼 [재배포 및 DB 금지] 연합뉴스

◇ 농촌지역 임금 급등, 농산물값 불안에도 여파

농촌 인력 부족으로 임금이 급등하면 농산물 가격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는 으레 채소 가격이 오르지만, 지난해 9월 추석 전에는 한 단에 2천∼3천원 하던 대파 값이 무려 7천원까지 치솟았다.

산지에서는 수확 때 대파를 거둬 묶어서 시장에 낼 일손이 부족했던 것도 대파 가격 상승의 한 요인으로 꼽는다. 이는 다른 농작물도 마찬가지다.

문경에서 사과 묘목을 길러 파는 박모 씨는 "묘목을 심고, 접붙이고, 옮겨 심고, 다시 파내 판매하는 과정에 모두 일손이 필요하다"며 "5∼6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생산비 중 인건비 비중이 50%를 넘지 않았지만, 이젠 70%에 육박한다"고 했다.

박씨는 임금 급등이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일당 상승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면 어쩔 수 없이 묘목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묘목 가격 상승은 다시 사과값 상승 요인이 돼 다시 소비자 물가 상승을 유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축수산물 가격은 2020년 6.7% 상승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보인 데 이어, 지난해 상반기에도 파, 사과, 달걀 등의 가격 급등으로 무려 12.6%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의 하나로 분석되지만, 외국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농촌 지역의 인건비 급등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외국인 임금 급등, 장기화할 가능성 커"

현재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농촌 지역은 고령화가 심각해 물리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노동 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실정이다.

더구나 내국인은 힘든 농사일을 기피해 농촌 지역의 구조적인 인력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백을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메우고 있다. 현재 농어촌 인력의 90% 이상을 불법체류자로 충당한다고 분석하는 학술 논문도 여럿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동안 관광비자로 입국해 석 달 가까이 국내에 머물며 일했던 외국인 단기 인력마저 완전히 끊어졌다. 이는 농촌 지역의 인력 수급 불안을 한층 가중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출국이 다시 자유로워지면 농촌 지역의 임금 급등세가 다소 진정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물가나 임금의 속성상 한번 오르면 하락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엄진영 연구원은 "외국 인력을 늘리는 단기대책뿐 아니라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중장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농업 부문의 이민 도입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이러한 장기적 대책 마련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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