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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통신] 노무현과 문재인, 미래와 과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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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영 편집이사
  • 승인 2022.05.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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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봉하마을에 몰려든 여야 지도부의 낯선 풍경
정치적 동지였던 전직 대통령의 대조적인 삶

미래와 과거라는 엇갈린 지향점이 만든 결과

며칠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모식이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퇴임 후 첫 외부행사로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용히 살겠다는 퇴임의 변과 달리 이재명의 손을 잡고 “선거가 걱정”이라 소회를 밝혔다고 이재명이 전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먼저 제안했다는 안 해도 될 말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인천 계양의 민심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대선 이후 첫 야당의 세 과시 행사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 풍경이다.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부산시장 출마와 2000년 총선 출마 당시 정치부 기자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현장에서 취재한 인연이 있다. 부산시장 출마 당시 그는 군부와 결탁한 YS에 대항한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지난 1990년 울산 올림피아 호텔에서 필자와 대담을 하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다만 선거 현장이 부산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보니 반 YS를 들고나온 그는 낙선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시장 출마보다 더 극적인 상황은 2000년 총선에서 종로를 버리고 부산 강서에 출사표를 던진 사건이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그 당시의 상황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부산역 광장호텔에서 가진 노무현의 출마 기자회견은 ‘소신'과 ‘애국'의 결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강서의 터줏대감이던 허태열의 벽을 깨지 못했다. YS의 천거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정치입문 이후 3번의 낙선과 2번의 당선, 탈당과 의원직 사퇴 파동을 겪었다. 가능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스스로를 빠뜨려 온 힘을 다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열정은 기존의 정치질서를 거부한 ‘튀는 정치인'의 본보기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딱 13년 전 토요일 아침이었다. 긴급 속보로 양산부산대병원발 서거 소식이 전해질 때 호외 제작을 위해 회사로 향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속보 속의 그는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의 앞부분은 생략했지만 노무현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흐트러졌을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아내의 오판이든 정권의 보복이든 그 어떤 올가미라도 스스로의 몫이라 판단했기에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두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울산이었다. 지금은 흔적이 사라진 올림피아 호텔 5층 온돌룸에서 그는 대한민국 재벌의 도덕적 결함을 외쳤다. 1990년 7월 두번째로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국회해산을 주장했던 그는 울산으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낮에는 울산대학교, 오후부터는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쩌렁쩌렁 목청을 울린 그와 호텔 방에 앉아 노동운동과 대한민국 정치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5년 뒤 부산에서 다시 그와 만났다. 기자회견 직후 참석 기자들과 칼국수 한그릇을 하고 각자 먹은 칼국수를 각자 계산하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가 노무현이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주뼛거리며 한 사내가 자리를 차지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운명이라는 노무현의 마지막 문장을 그대로 안고 정치판에 나선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에게 ‘차출당했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치입문을 포장했다. 정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을 산 그가 청와대를 향해 머리를 내민 것은 단 하나, 정신적 형제이자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 현장에서 좌충우돌하던 시절 문재인은 옆에 없었다. 그만큼 스스로 정치와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고 실제 삶도 그랬다. 7살 손위의 사형인 노무현과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로 살아온 시간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시기부터였다. 저돌적인 노무현은 침착하고 범생이인 문재인을 의지했다고 한다. 사건을 물어오는 건 노무현이었고 법정에서 변호는 문재인이 도맡아 할 정도로 문재인에 대한 노무현의 믿음은 남달랐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스타일을 설핏 아는 이들은 둘의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제대로 아는 이들은 환상의 조합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문재인은 노무현의 죽음 앞에 개인적 삶을 포기했다고 술회했다. ‘문재인의 운명'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은 노무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의 친구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어쩌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엄청난 기회에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정치적 출발을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찾았다. 그 죽음의 실체를 파헤치다 세월호를 만났고 노무현과 세월호가 뒤섞인 보복과 진실규명이라는 이름의 망령이 그의 정치 이력에 그림자로 따라다녔다. 미래를 향한 정치가 아니라 과거를 뒤지는 정치는 운동권이 주위를 에워싸고 그 인의 장막이 정치적 담보물이 됐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퇴임 직전까지 40%의 지지층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간 첫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지지층의 반대라도 국익 앞에 당당히 미래를 외친 노무현과 적폐와 과거사 뒤지기에 열중한 문재인의 가장 뚜렷한 경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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