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前직장 상대 일부 승소
합리적 기준 없는 차별 불가 판결
한국노총 “무효화·폐지 나설 것”
경총 “도입 목적·법 취지 고려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현행법 상 무효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노동계의 ‘임금피크제 전면 폐지’의견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여, 노동자의 도시 울산의 대규모 산업 현장에서도 노사 재협상 등 변화가 불가피해 혼란이 예상된다.

26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다른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등을 합리적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로, 사실상 임금피크제에 제동을 건 것이다.
물론 이번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무효’라는 것은 아니다.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연장형’으로 나뉘는데, 이번 판결은 정년연장 없이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사례에 해당한다.
대법원 관계자도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건 관련 기업들이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 효력의 인정 여부는 도입 목적의 정당성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합리적 판단 기준에 대한 해석이 기업과 노조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또 이번 판결을 두고 지역 기업 관계자들도 의견이 분분해 당장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역 한 대규모 화학관련 산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관계 없다”고 선을 그은 반면, 한 대규모 제조업 관계자는 “지난 2월에 ‘정년연장형’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의 손을 들어줬는데, 오늘 대법에서 ‘연령’이 이유가 되선 안된다는 판결을 해 앞선 소송 건도 뒤집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재판부가 합리적 판단 기준을 제시했지만, 사실 회사와 노조가 같은 해석을 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과 함께 노동계 움직임이 분주하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환영하지만, 무효 판단 근거를 연령에 따른 차별 등으로 제한한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울산본부 관계자는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이 제도가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는 미미했다”며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의 고용 불안과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 기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향후 관련 판결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과 법의 취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내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임금피크제는 연공급 제도 아래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를 무효로 하면 청년 일자리 감소와 중장년 고용불안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임금피크제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를 확대해 세대 간 상생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2000년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됐으며, ‘60세 정년 의무화’ 등 정부의 장려과 맞물려 2016년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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