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을 때 인류를 지구라는 행성에 묶어 두었던 고삐는 끊어졌다. 무한한 우주 공간이 인간에게 열렸다. 소련은 당시로선 과학기술의 기적을 성취했다. 반면 미국의 로켓 연구자들은 위성을 쏘아 올리려고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강력한 미국을 자부했으나 20세기 들어서 최초로 열등감에 빠졌다. 소련의 승리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한달 후,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를 보란 듯이 또 발사했다. 무게가 0.5t인 이 인공위성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실어 보내 소련은 사상 최초로 생물체를 지구궤도에 진입시켰다. 이는 머잖아 소련이 인간을 우주 공간에 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 것이었다. 냉전 분위기가 고조돼 있던 시기였기에 서방에서는 적에게 하늘을 통째로 빼앗겼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KSLV-2)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1t 이상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실제로 누리호 성공은 소련의 R-7 로켓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은지 65년 만의 성과다. 이후 미국(58년), 프랑스(65년)가 첫 우주로켓을 쏘아 올렸다. 중국과 일본은 70년, 인도도 80년에  자력으로 개발했다.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를 창설한 이래 미사일 기술과 부품의 국가 간 거래를 금지해 왔다. 거래 금지는 동맹국인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옛 소련권 국가들이 한국에 우주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와 98년 러시아의 디볼트(채무불이행) 등 대혼란의 시기가 있어 가능했다. 러시아는 국가 핵심기술을 일부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21일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75t 로켓엔진은 러시아 액체로켓을 사실상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역공학)한 결과다. 헬륨탱크는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0년 가까이 한·미 동맹의 긴밀한 관계였지만, 정작 한국의 우주로켓 개발의 은인은 러시아 등 과거 미국과 냉전을 벌였던 옛 소련권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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