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과 함께 지상 5층, 연면적 781평 규모의 건물은 615곳에 설치된 27㎏의 화약이 18단계의 폭발을 거치며 차례로 내려앉았다. 1996년 8월 4일 오전 7시 25분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옛 안기부 청사 제1별관은 불과 5.5초 만에 3m 높이의 건물 잔해 더미로 변했다. 
 이날 폭파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 상당수는 이른바 ‘남산’으로 불리던 공포의 정보정치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반겼다. 유신 독재정권 시절 ‘남산’ 즉 중앙정보부에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다. 1964년 중정 요원 수는 37만명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남한 인구의 약 10% 정도가 중앙정보부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민들과 지역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신분을 위장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1961년 군사혁명정부의 중앙정보부로 출발, 신군부 집권 후인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로, 1999년 1월 김대중 정부는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개편했다. 대공 파트를 과거 군사정부 유산으로 여겨 대폭 축소했다. 2020년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국가정보원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국내 정치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정원은 완전 초토화 됐다. 간판 업무의 하나였던 대공 수사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원장 4명과 간부 40여명이 감옥에 갔으며, 조직의 명예와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정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모토)은 정권 따라 바뀌었다. ‘정보는 국력’(김대중),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명박),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박근혜), 문재인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꿨다.
 24일 윤석열 정부는 창고로 쫓겨가 있던 1961년 첫 원훈석을 다시 설치했다. 음지로 사라졌던 원훈석이 23년 만에 양지로 나왔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문구 그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적폐 청산’으로 감옥에 간 전직 원장들과 간부들도 하루빨리 사면·복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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