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울산시청에서는 우호협력도시 일본 니가타시 청소년들과 울산의 청소년들이 화상을 통해 교류행사를 가졌다. 이날 교류회는 울산 관내 중학생 6명과 니가타시 시립 키도 중학생 4명 등 10명이 참석해 서로의 문화와 학교생활 등을 소개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울산시와 니가타시는 지난 2006년 9월 21일 우호협력도시체결 이후 문화예술, 환경, 청소년교류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울산도 일제강점기와 여러 가지로 얽혀 있다. 그 역사의 고리 때문인지 울산은 유독 일본에서 골수 우익의 본향으로 유명한 도시들과 친선관계를 맺어왔다. 하기시와 구마모토, 그리고 비젠시 등이다. 문제는 이들 도시가 일본의 골수 우익 도시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제대로 알고 우호협력이나 자매결연을 한 것인지조차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일본 시골마을 하기시와 울산은 자매도시의 연을 맺고 있다. 자매도시를 맺고 교류를 하고 있는 하기시는 어떤 도시인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저격한 이토히로부미와 그의 정치적 동지들인 이노우에, 미우라 등 조선 침략의 장본인과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들이 자라고 야욕을 키운 땅이다. 한마디로 일본 우익 뿌리이자 혐한의 본향이다. 이런 도시와 울산은 왜, 무엇 때문에 자매도시의 연을 맺어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없이 지난 1968년 자매의 연을 맺었다. 경상남도 울산시 소속으로 경남도의 교류협력에 하나의 성과물로 울산이 선택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기시의 문제가 아니라 울산과 일본의 우호협력도시나 자매결연 도시는 따져보고 짚어봐도 역사적 맥락이 없는 주먹구구식이다. 지난 2010년 울산시는 일본 구마모토(熊本)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했다. 우호협력의 종잇장에 서명을 하고 교류를 다짐했다. 구마모토는 조일전쟁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서 퇴각하면서 울산 사람을 끌고 가 성곽을 짓고 자신의 터전을 마련한 도시다. 울산마찌(蔚山町)라는 왜의 전리품이 남아 있는 인연으로 자매도시의 연을 맺기에는 그들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이나 사과나 반성의 행동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코무덤으로 유명한 일본의 비젠시도 울산 동구와 우호협력도시다. 비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오게 해 전리품으로 무덤을 만든 능욕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과거사보다 미래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 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하 정리 없이 미래로 나가는 것은 모순이다. 똑같은 과거가 되풀이 돼어도 용인할 수 있다는 묵시적 동의다. 과거사는 철저히 따져 문제가 되는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는다. 민선 8기 출범 초창기에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국제교류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다. 잘못된 교류는 정리하고 재정비가 필요한 관계는 절차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광복의 달, 8월이다. 의미 있는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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