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람이 혼자 있으면 행렬이 생기고, 이스라엘 사람이 둘 있으면 세개의 정당이 생기고, 일본 사람이 셋 있으면 네개의 상사(商社)가 생긴다.(1980년대 농담) 개화기 때 영어 한마디도 못 하고 영국에 외교관으로 떠나는 사람이 꼭 외우고 가야 할 영어 한마디가 있었다. 다름 아닌 ‘애프터 유!’였다고 외교 문집에 쓰였다. ‘당신 뒤에 줄을 서겠다’는 이 말과 이 말 뒤에 숨은 정신만 잘 지키면 영국에선 살 수 있었을 만큼 줄 서 기다리는 것이 생존 조건이 돼 있다. 
 이 기다리는 문화를 계승한 사람들이 미국인들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주유소 앞에서 평균 10~15시간 줄지어서 기다려야 기름 한 초롱 살 수 있었다. 그것도 가족이 번갈아 가며 줄을 서는 행렬전쟁이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에 참배하기 위한 대기 줄이 최장 16㎞에 달했다. 최대 24시간 이상 줄을 서 기다리다 구급 처치를 받은 사람이 700명을 넘었고, 81명이 입원했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16일 13시간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참배했다. 2차 대전 때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던 시민들의 습관이 영국의 문화로 굳어진 면도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번 추모행렬에서 ‘The Queue’라는 별칭이 붙었다. 영국에선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뜻의 동사가 ‘queue’인데, 미국에선 주로 ‘stand(혹은 wait) in line’이란 표현을 쓴다.
 우리 한국사람은 과거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데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우스개 이야기도 많다. 해방 직후 관청에서 물자 배급을 주는 데마다 줄을 섰지만 새치키 통에 한번도 차례가 돌아오질 않았다. 홧김에 너 죽고 나 죽고 할 셈으로 칼을 들고 관청에 달려갔더니 이미 칼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우리 한국에서도 최근 줄 서기 문화는 많이 익숙해졌다. 줄서서 기다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과 공존하는 공적(公的) 공간에서 가장 이타적이면서 가장 이기적인 사적 위상이다. 허트러진 위상의 노출은 국제화 사회에서 가장 쉽게 드러나는 치부이다. 영국의 줄서기 문화는 여왕의 굳건했던 리더십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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