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지역은 일찍부터 철을 생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원지역 대표적 철관련 유적지, 공주 석장리유적 전경. <제공=국립청주박물관>

한반도에서 철은 고대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자원이었다.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한 것은 철로 만든 농기구 덕분이며 철의 생산과 철기의 사용은 벼농사를 크게 발달시켰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의 일부가 일본 열도로 건너가 철기문화의 벼농사를 전 일본에 전수한 결과가 됐다. 철제 무기의 개발은 강력한 군사력의 증강을 가져왔고, 중요한 교역품으로 국가의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고대부터 철을 생산해 온 우리나라는 진정한 제철 강국이었으며, 그 중심에 ‘울산’이 있었다.

◆ 한반도 철의 유래와 주요유적

우리나라의 철기문화는 중국 대륙으로부터 유입됐고,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파됐지만, 토착적인 청동기문화와 융합되어 새롭게 생성, 발전돼 나갔던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중국에서 유입돼 발전된 철기문화는 BC 4〜BC 3세기경에 이미 한반도로 유입되던 이주민들을 통해 전래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는 철기뿐만 아니라 중국 계통의 청동기도 함께 전래됐다. BC 2세기 초 위만(衛滿)조선의 성립으로 대동강 유역에는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공존했으며, BC 1세기 말 한군현(漢郡縣)의 설치와 함께 한반도는 본격적으로 철기시대가 발달해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의 북방지역 부족국가와 삼한이 지속되던 남방지역 부족국가에 급속히 전파돼 철기 부족국가 형성에 기틀이 됐다.이러한 철기문화는 1세기경에 고대국가인 고구려와 뒤이어 백제·신라의 3국을 형성했다.

한반도의 철기 유적으로는 압록강 중류 지역과 평안도 서부 지역에서 기원전 300년 무렵의 중국 전국시대의 화폐인 명도전과 철기들이,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에서는 중국 연(燕)의 제품으로 보이는 철도끼, 철화살촉, 철창 등과 함께 철제 낫, 반달칼, 괭이, 보습 등의 농기구가 발견됐다.

철기 도입 시기의 유적은 주로 무덤형태로 남아 있는데, 청동기와 철기를 함께 껴묻은 당진 소소리, 부여 합송리, 장수 남양리 등의 유적이 있다. 특히 의창 다호리 고분군에서는 매우 화려한 유물이 발견됐는데,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목관과 중국 화폐 및 여러 가지 청동기와 철기 등을 사용할 때의 모습 그대로가 출토됐다. 

이보다 약간 늦은 시기의 유적이지만, 광주신창동의 소택지유적과 토기 가마, 사천시 늑도, 창원 성산 등의 집자리의 생활유적은 철기문화 초기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한반도의 철기시대에 대한 연구는 최근 유적 발굴조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많은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 2008년 충주 다인철소 유적에서 발굴된 제철관련 유물.

◆충주와 김해에서 꽃핀 철기 문화

한반도의 철기문화는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지방과 가야문화의 꽃을 피운 김해를 꼽을 수 있다.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지역은 일찍부터 철을 생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백제는 중원지역으로 진출 후 철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철광산을 개발하고 철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제철관련 유적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20개소에 달하며, 여기에 목탄을 공급했던 탄요유적도 72개소에서 518기가 확인됐다는 것은 활발했던 중원지역의 철 생산을 뒷받침하고 있다.또한 문헌자료에서도 신라의 3대 문장가인 강수는 중원경(中原京)의 대장장이 딸과 결혼했고, 항몽(抗蒙)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려시대 다인철소민(多仁鐵所民)의 항전기록, 조선시대 지리지에서 보이는 철산지와 토산품 등의 기록을 통해서도 중원지역이 예부터 철과 관련돼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병선 전 국립중원문화재 연구소장은 “고대 삼국이 풍부한 철을 확보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 중원지역이었다”고 밝혔다. 

삼한시대 변한의 모체로 건국된 가야는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해 나갔다. 가야는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지만 철기문화는 그 시대에 최고로 발달돼 있었다. 가락국의 다른 이름인 금관가야는 곧 쇠나라(鐵國)라는 뜻이며, 수로왕은 김해 철산을 지배해 ‘철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가야의 철광으로는 금관가야의 김해철산, 대가야의 야로철산, 황산철산, 적지산철산, 모대리 사철광 등이 있었다. 
 

▲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가야 철제투구 유물 중 명작인 금동장식투구. 금동으로 장식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가곡마을 뒤 야산에서 발굴 조사된 양도리 고분군의 각종 철기 및 청동기 등은 가야인의 그 문화의 계통 파악은 물론, 고대 이 시기 왜(倭)등과 교역했다고 전한다. 

◆ “동양의 스키타이 문명이 탄생한 곳” 달천철장

BC 2세기경 조성돼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철광석 채광장으로 밝혀진 울산 달천 철장은 2008년 발굴당시 고고학계를 흥분시켰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철기문화는 중국 한나라 이후 중국대륙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울산 달천 철장의 유적 발굴 이후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울산은 이렇듯 고대부터 대규모 채광 유적인 달천 철장(達川鐵場)이 위치해 철과 철기 생산의 중심지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라에 버금가는 강력한 집단을 형성했다. 

한반도에 철기문화를 처음으로 일으킨 지역이라는 것이다. 울산의 제철 유적은 모두 54곳, 철기 출토 유적은 89곳으로 그 종류는 무덤에서부터 건물지, 경작지 등 다양하다. 달천 철장을 중심으로 반경 40km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야철 유적지만 100여 곳이 넘는다. 

경북대 권병탁 명예교수는 “달천철장은 ‘동양의 스키타이 문명이 탄생한 곳’”이라고 극찬하면서 “달천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철 생산의 문화권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일본학자 오오자와 타다키 박사는 달천철장이야말로 ‘고대 동아시아 철기문명의 요람’이었다면서 울산시에 공식적으로 보호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달천철장에 뿌리를 둔 울산은 다시 한 번 고대 철기문화의 부활을 꿈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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