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역신문발전기금 공동기획취재 ‘성 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1)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캠페인 눈길
전문가 성차별적 언어 개선 10건 선정
“단어가 생각 바꾸고, 또 행동도 바꿔”
‘미투 열풍’ 언론이 2․3차 피해 키워
선정적 단어․성적 소비 기사 보도 지적
성폭력사건 가이드라인 활용 교육 필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성평등도시 서울'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한 도서관 ‘여기’. ‘여성이 기록하고 여성을 기억하는 공간, 바로 이곳(her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2018지역신문발전기금 공동기획취재에 참여한 전국 주요일간지 기자들과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들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안내로 '여기'를 둘러보고 있다.

사회 전반에 각종 성 불평등이 사회적 문제(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는 단순 일과성을 넘지 못해, 상업성으로까지 확장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울산매일신문은 성 평등 보도와 관련, 지역 언론의 올바른 역할을 선도하고 성 평등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동기획취재에 참여했다. 국내외의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취재해 총 5회에 걸쳐 문제와 해결점을 제시해 본다.편집자 주
 
◆성 평등은 일상 속 언어개선부터

현재 우리사회에는 습관적으로, 혹은 대체할 말이 없어서 성차별적 언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지난 6월 서울시 성평등주간(7월 1∼7일)을 앞두고 흔히 사용하는 일상 속 성차별 언어를 시민과 함께 개선하는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캠페인을 펼쳤다.

열흘 남짓 진행된 캠페인에서는 608건의 시민 의견이 제안됐고, 국어·여성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거쳐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 우선 공유·확산해 개선할 10건을 선정했다.

전체 608건 중 100건으로 가장 많은 제안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붙는 ‘여(女)'자를 빼는 것이었다. 여직원, 여교수, 여의사, 여비서, 여기자, 여군, 여경 등을 그냥 직원, 교수, 의사, 비서, 기자, 군인, 경찰 등으로 부르자는 것이다. 여자고등학교나 여자중학교에만 붙는 ‘여자'를 빼자는 제안도 나왔다.

일이나 행동을 처음 한다는 의미로 앞에 붙이는 ‘처녀'라는 수식어도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도 50건 제기됐다. 처녀작, 처녀출판, 처녀출전, 처녀비행, 처녀등반 등을 첫 작품 등으로 ‘첫'을 넣어서 부르자는 것이다.

유모차(乳母車)도 엄마만 끌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어 유아차(乳兒車)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밖에 3인칭 대명사인 ‘그녀'를 ‘그'로, ‘저출산(低出産)'을 ‘저출생(低出生)'으로, ‘미혼(未婚)'을 ‘비혼(非婚)'으로,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으로, ‘몰래카메라'를 범죄임이 명확하게 ‘불법촬영'으로, 가해자 중심적 용어인 ‘리벤지 포르노'를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자는 제안도 10선 안에 포함됐다.

정선재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 차장은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시민이 제안한 성평등 언어가 생활 속 성평등 의식을 높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울산매일신문, 경남도민일보, 무등일보, 강원일보, 한라일보, 시사인천 등 전국 주요 지역일간지와 주간지들은 '성평등과 지역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여성정책연구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찾아 공동기획취재를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취재 모습.
◆언론이 선도한 ‘미투 2차 피해’

올 초 국내는 ‘미투운동’이 뜨거웠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미투’ 열풍 만큼이나 언론의 보도경쟁도 뜨거웠는데, 미투운동에 대한 언론보도를 모니터링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내용으로 오히려 2차, 3차 피해를 가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서울 YWCA 양성평등 미디어모니터회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대중매체양성평등 모니터링사업’의 일환으로 미투운동과 관련한 언론보도의 성차별성을 분석하기 위해 2018년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보도된 기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네이버 포털뉴스 검색 기능을 사용해 검색어(사건)별로 랜덤으로 검색어당 150개의 기사, 총 1,500개 기사를 모니터링을 했다. 검색어는 ‘미투, 서지현’, ‘미투, 안희정’, ‘미투, 이윤택’, ‘미투, 조재현’ 등이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가해자의 피해만을 부각하는 등 가해자의 입장을 중점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는 전체 21.6%인 것으로 나타났다. 펜스룰, 성별격차 심화 등 미투운동으로 인해 조직문화 및 사회적 문제가 야기됐다고 말하는 보도 또한 적지 않았다.(10.5%) 또 ‘몹쓸 짓’, ‘나쁜 손’ 등 성폭력 사실을 축소시키고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이 기사에서 쓰였으며, 성폭력 사건을 묘사하는데 있어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성폭력 사건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기사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신상공개, 가해자 중심의 보도, 미투운동의 축소를 야기하는 부정적인 담론의 생산·배포,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선정적 보도가 모니터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민근식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교육부 팀장은 “언론은 이슈 퍼나르기식의 보도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피해 사실을 전시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미투운동을 단순히 ‘뜨거운 감자’로만 다루지 않고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해 보이지 않았던 미투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사건과 관련한 잘못된 보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언론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가장 시급하다.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을 모든 기자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며 성평등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고 형식적인 ‘객관주의’에서 벗어난 언론의 새로운 규범과 윤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성평등도서관 ‘여기’.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도서관 ‘여기’

‘성평등도시 서울’ 실현 위해 설립
여성단체․기관 자료 등 열린 공간
성평등 정책 등 디지털화 영구보존

‘성평등도시 서울'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여성과 가족을 위한 성평등 플랫폼'을 표방하고 서울여성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여기'는 서울여성플라자 내 2층에 857㎡ 규모로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여성정책 자료, 여성운동·여성단체·여성기관 자료가 모여 있고 관련 모임과 토론, 전시 등을 열수 있는 공간도 있다.

도서관 이름은 ‘여성이 기록하고 여성을 기억하는 공간, 바로 이곳(her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벽면에는 여성들을 위한 정보가 담긴 안내책자들이 정리돼 있다. ‘여성을 위한 꼼꼼 서울-여성종합가이드북', ‘여성안심특별시', ‘소녀돌봄약국' 공공자료부터 ‘여성환경연대', ‘성폭력상담소' 등 NGO 소개 책자까지 여성들은 언제든 친숙하게 이들과 만날 수 있다.

기증한 여성사 관련 자료를 ‘성평등 정책·현장자료 디지털아카이브시스템'으로 디지털화해 영구 보존하고 시민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부천서 성고문사건(1986), 서울대 신교수사건(1992), 여성국제전범 기록물, 위안부 자료집 등 여성사와 관련된 당시 종이 기록물은 물론, 기사스크랩자료 약 1만장과 포스터 67종 122장, 기념품 80개 등도 디지털화돼 보관중이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당시 작성된 시민 추모 메시지(포스트잇) 3만5,000여 장도 정리돼 있다. 그곳에는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성이 살기에 안전하고 남성, 여성이 평등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고민한 흔적이다.

※본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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