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대표적 주거형태가 된 대규모 아파트단지.연합뉴스

전 국민 집값에 목을 매는 시대 
투기 전 청와대 대변인 시세차익 10억 
학생 없어 `전학 오면 집 준다'는 시골 

17번 부동산대책에 내성(耐性) 생겨 
문정부 아파트값 가장 가파르게 올라 
갈 곳 잃은 돈 풀려 내집 마련 부담 커져 
 

김병길 주필

 

‘전(전세) 거지, 월(월세)거지, 엘(LH임대아파트)거지….’ 서울 초등학생들이 쓰는 은어(隱語)다. 주거 형태에 따라 친구를 차별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학부모에게서가 아니면 어디서 들었겠느냐는 얘기다. 자녀가 상처 받을까봐 무리해서라도 일류 브랜드 아파트로 옮겨야 하는 것일까. 결론은 겉보기가 전부인 대한민국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전학 오면 집 줘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드는 전남의 한 초등학교가 타지에서 이사 오는 신입생과 전학생 가족에게 집을 공짜로 빌려 주겠다고 나섰다. 전남 화순 아산초등학교의 내년 신입생은 단 2명이다. ‘집 무상제공’은 학생 수를 늘리려는 고민 끝에 나온 파격적인 조치다. 
한자 집 가(家)는 지붕 아래 돼지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수천년 전, 한 민족이 중국 동북 지역에서 집단 거주할 때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까지 기어드는 뱀이 큰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뱀의 천적이 돼지라는 걸 알게 된 동이족이 집안에 돼지를 키웠기 때문에 ‘집 가(家)’자가 태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집은 생각으로 짓고 시간이 완성하는 생명체 같은 것이다. 집에는 가족이 나누던 온기와 생활의 흔적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담긴다. 사람들이 떠나거나 집이 사라지더라도 집에 쌓인 시간과 생각은 그대로 남는다. 그렇게 집은 생명력을 얻고 영원히 기억된다. 
집에 대한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 집이란 밖에서 시달리다가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단지 넓다거나 새로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 복처럼 헐렁하고 편한 집이어야 한다. 전 국민이 집값에 목을 매는 시대에 곱씹어 볼 만한 질문이다. 
주택 2채를 가진 세 살배기 아이도 있었다.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드러났다. 아버지가 아이 명의 계좌로 현금을 송금한 뒤 주택을 사들이고, 세입자들에게 돌려줄 임대 보증금은 할아버지가 내줬다. 이 과정에서도 증여세 납부는 없었다. 국세청은 수억원대 증여세를 추징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작년 7월 서울 흑석 9구역 내 대지 272㎡자리 상가 주택을 25억 7000만원에 사들였다. ‘투기 논란’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사퇴했으나 최소 10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게 됐다.
은행 대출 10억여원에 개인 빚까지 끌어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재개발 딱지’를 샀다. 은행 이자만 매달 330만원씩 내야 하는 ‘고 위험 투자’였지만 아파트가 완공되고 나면 34평 아파트 한 채와 단지 내 상가를 받을 수 있다. 34평 아파트 하나 만으로 김 전 대변인이 얻은 시세 차익은 지금 기준으로 10억원이 넘는다. 
김 전 대변인의 투자는 정부가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며 각종 규제를 쏟아내던 시점에 이뤄졌다. 김 전 대변인 투자 이후 14개월 간 서울 동작구 아파트 값은 서울 평균 상승률(8.2%)을 웃도는 9.7% 상승을 기록했다. 
최근 5년 동안 주택 한 채를 팔아 10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본 셋 중 하나는 서울 강남 3구(서초 강남 송파) 거주민이었다. 집값이 10억원 이상 오른 이른바 ‘로또 주택’ 전국 매매 건수의 3분의 1(35.9%)이 강남 3구 주민이었다. 서울의 입주 1년 미만 새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분양가 보다 평균 4억원 가까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실련에서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을 조사한 결과, 역대 정부 중 문재인 정부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서울 강남 아파트의 평당 연간 상승액이 문재인 정부가 810만원으로 노무현 정부(450만원)의 1.8배다. 비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폭도 문재인 정부(371만원)가 노무현 정부(183만원)의 2배를 웃돈다. 
최근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 추가 지정’ 엄포에도 시장은 콧방귀뿐이다.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면 벌벌 떠는 시늉이라도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콧방귀만 뀐다. 현 정부 들어 쏟아낸 17번의 부동산 대책에 내성(耐性)이 생겨 ‘백약이 무효’다. 
엄포가 이어지면서 (대책의) 칼날이 무뎌지고 있다. 정부의 조바심과 불안감만 느껴진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와 카페에도 ‘손만 대면 오른다’며 김현미 건교부 장관을 ‘미다스의 손’에 빗댄 글도 있다. 
1982년 가수 윤수일이 ‘아파트’란 노래를 선보였을 때 ‘갈대숲’을 지나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아파트가 불과 한 세대도 안 돼 대표 주거지가 됐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 외국인 도시 계획가는 서울 지도를 보고는 “한강변 군(軍) 병영기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한국 아파트 단지 연구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 여성 지리학자는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이유를 ‘새 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국가-기업-중산층의 이익 연합구조가 아파트 대량 생산 체제를 잘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갈 곳을 잃은 돈이 부동산 시장에 풀리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만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국에서는 공유주택이 주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대신 같이 사용하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에는 많은 표정이 있다.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또한 시간에 따라 집의 표정은 다양하고 다채롭게 달라진다. 집이란 지나치게 빈틈없이 꾸며졌다고 만족할 수만은 없다. 설령 제한된 비좁은 공간일망정 터진 곳이 있어야 하며, 또한 꽉 막힌 곳도 어느 곳엔가 있어야 한다. 
옛말에 큰 집은 옥(屋)이라 하고, 작은 집은 사(舍)라 했다. 옥은 시체(尸)가 이른다(至)는 것이고, 사는 사람(人)이 길(吉)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