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일이든 저절로 얻어지는 결과가 없듯

소중한 일일수록 정성은 몇배의 에너지 필요

시를 읽으며 푸릇푸릇한 풀의 봄을 기다린다

이강하 시인

늦잠을 잤다. 창이 어두침침하다. 창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는 것만 같다. 가습기에서 솟아나는 습기가 떨어지면서 나의 눈과 코에 휘감긴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프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습기가 없으면 안 되는 몸이 되었다. 새삼 가습기의 고마움을 느끼는 아침이다. 

“오늘도 슬쩍슬쩍 바라보고 있네…  사랑에 빠졌나봐”  ‘사랑에 빠진 딸기’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촉촉한 딸기가 먹고 싶어라, 맛있는 딸기, 새콤달콤한 딸기… 유난히 예뻤던 나의 두 아이를 데리고 딸기밭에 간 기억이 났다. 거실 벽 가족사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딩동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현관문을 빼꼼히 열었다. 
 

“이강하씨 본인인가요?” 너무 큰 목리였다. 화들짝 놀랐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한 탓이려니 생각했는데 가슴이 쿵쾅거리며 저렸다. 택배 내용물은 ‘춘천 닭갈비’였다 “아! 사장님, 또 선물을 보내셨군요. 감동이에요! 저는 해드린 것도 없는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따뜻한 물을 마셨다. 라디오에서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래전 대전에서의 문학 활동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박선생님은 2002년, 본격적으로 시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지금은 강원도에서 사업을 하면서 시를 쓰고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대전에서 살았다. 시를 쓰는 동안 나에게 힘이 되어준 분 중 한 분이시다. 그 당시 내가 소속한 동인들의 시합평은 뜨거웠다. 누가 선배이고 누가 후배인지 모를 정도로 부담 없는 공평한 질책의 나날이었다. 그렇게 동인들과 시합평을 하면서 시문학에 빠져들었다. 김기택 시집 3권을 나에게 선물해준 주난이는 지금도 잊지 못할 고마운 친구다. 어느 때부터 더이상 대전에는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발이 아픈 것이 한계였다. 
 

그 후로 박선생님을 뵙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시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시문학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한동안 시 발표가 없으면 어디 아픈 것 아니냐고 지금 병원에 있는 것 아니냐고 따뜻한 안부 메시지를 보내시곤 하셨다. 
 

박선생님은 시도 잘 쓰지만 인품도 훌륭하시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종교관도 뚜렷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셨다. 나도 박선생님처럼 목적을 두지 않는 진심이 담긴 봉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진정한 봉사를 하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한다. 

그리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모든 것에서 부지런해야한다. 어떠한 일이든 저절로  얻어지는 결과가 없듯이 소중한 일일수록 정성은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박봉준 시인의「풀」이라는 시를 읽으며 푸릇푸릇한 풀의 봄을 기다린다. 
 

“사전에서 풀을 찾았더니// ‘초본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산이나 들, 논과 밭, 길가 등에 저절로 자라며 대개 한 해를 지내고 죽는다.'// 누가 그래/ 저절로 자란다고/ 세상에 저절로 자라는 게 있느냐// 짧은 생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ㅡ(박봉준 詩「풀」전문)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