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이는 <그림=박지영>   
 

둘이는

성명진

소가 앞서고

할아버지가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디쯤에선가 멈춰

친구처럼 다정히 쉽니다.

할아버지가 무어라 말하고

소가 고갯짓을 합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앞섭니다.

서로 몸을 바꿨는지 모릅니다.

―성명진 동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창비, 2011)

◆감상 노트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이. 이런 친구, 아니 자식을 둔 성 씨 할아버진 얼마나 행복하셨을까요? 중환자실에 아버지를 두고 딴 집으로 가야했던 암소 노을이가 떠오릅니다. 출산을 한 달 여 남기고 거둘 사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 밖에 없었던 노을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였던 노을이를 보낸 날, 오열하던 어머니 모습이 선합니다. “눈 떠 보소. 노을이 팔았심더…….” 말문이 닫혀가던 아버지 가슴에 어머니가 올린 건 꽁꽁 보자기 싼 돈뭉치였습니다. 노을이가 살아있다면 아버지와 노을이도 시처럼 아름답지 싶습니다. 서로의 몸을 바꿔 입을 만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 세상 건너는데 그보다 귀한 게 어디 있을까요.

=남은우·그림=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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