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길 주필

하천정비·홍수대비 제방 축조계획 따라
1987~1989년 사라질 뻔했던 대숲
보전회 시민운동으로 겨우 살아남아

잠시 휘더라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숲
간벌하면 간격 벌어져 쉽게 꺾여
태풍·침수 무대책땐 국가정원 미래 없어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를 나무도 풀도 아니라고 노래했다. 대나무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이 나무의 특성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 대나무이기에 나무인 듯 하지만, 보통 나무와는 다르다.
나무는 세월이 흐르면서 몸집이 자라지만, 대나무는 처음 굵기가 평생 그대로 유지된다. 죽순(竹筍)의 굵기가 곧 평생의 몸집이다. 대나무는 볏과 이지만 대나뭇과로 만들어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것이 대나무만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으니까다.
대나무의 한자 죽(竹)은 대나무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대나무를 볏과에 분류한 것은 이 나무가 벼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풀의 습성이 적지 않다.
대나무는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글을 적는 재료였다. 바로 그것이 죽간(竹簡)이다. 공자도 죽간으로 공부했다. 글 종류 중 편지글이 있다. 그런 글을 서간문(書簡文)이라 한다. 서간문의 간(簡)은 대오리를 엮어 문자를 쓰는 대쪽을 말한다. 중국 진(晉)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은 대숲에서 놀았다. 살다 힘들 땐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생각난다.
 

지난 8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내 십리대숲 대나무들이 태풍 ‘하이선’영향으로 꺾이거나 쓰러져 큰 피해를 당했다.연합뉴스

대나무는 번식력이 왕성하다. 잠깐 한눈팔면 어느새 대밭으로 변한다. 음력 5월 13일은 대나무가 잘 사는 날이고, 음력 8월 8일에 대나무를 심으면 사람이 잘 산다고 한다. 이날이 죽취일(竹醉日)이다. 이렇게 좋은 날 폭죽(爆竹)을 터뜨리면서 축배를 들었다. 폭죽도 중국인들이 대나무를 태우면서 나는 소리에서 힌트를 얻어 처음 만들었다.
대나무는 마디마디가 진공상태이기 때문에 불에 넣으면 강한 소리가 난다. 영어 ‘뱀부(bamboo)’도 대나무를 불에 태울때 나는 소리에서 빌린 것이다.
대나무는 톱으로 잘라낸 후 자른 대나무 가운데에 칼이나 낫을 넣으면 ‘쫙’하는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쪼개진다. 이게 파죽지세(破竹之勢)이다. 철제 무기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죽창(竹槍)으로 싸웠다. 김삿갓은 대나무 지팡이 죽장(竹杖)에 삿갓쓰고 방랑삼천리에 나섰다. 대나무에는 마디가 있기 때문에 대나무 지팡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가 사용했다. 음양의 논리이다.
최근 울산 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이 펴낸 ‘숲과 나무가 알려주는 울산 역사’에서도 태화강 대나무숲 이야기가 실렸다. 이른바 ‘십리대숲’은 일제 강점기 울산수리조합 창립위원인 오카다 쵸우베이(岡田長兵衛)가 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일대의 대나무숲은 일제 이전부터 있었고 여러 문헌기록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명종때 문신이자 문장가인 노봉 김극기(老峰 金克己·?~1209)가 지은 『대화루시서(大和樓詩序)』에 대화사 주면의 대나무가 묘사돼 있다. 
태화강의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있다. 정포의 울주팔영중 『벽파정』에는 태화강 위로 가을 노을에 비친 대숲의 그림자가 묘사되어 있다. 또한 울산지역에는 대나무 관련 지명이 많이 있다.
태화강 십리대숲은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89년 건설부는 ‘태화강 하천정비 기본계획’을 확정 고시 했다. 이 계획에는 십리대숲의 벌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숲 벌목에 대한 근거는 1987년 건설부 발주 용역 ‘태화강 하천정비 기본계획’보고서에 있다. 보고서에는 중구 태화동 홍수를 대비하기 위한 제방이 축조되어야 하며, 원활한 유수소통과 제방 축조를 위해 삼호교에서 태화교까지 대숲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1989년 확정되면서 대숲은 치수(治水) 행정의 당위성 아래 벌목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1991년 울산시는 ‘2000년대 울산 건설’을 목표로 1999년까지 대숲을 없애고 68만여㎡의 시민공원을 만들기 위한 ‘태화강 연안 종합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1991년 태화강 보전위원회의 시민운동으로 지켜내 대숲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2020년 9월, 제10호 태풍 ‘하이선’은 태화강 국가정원 일원 대숲을 초토화시켰다. 울산을 통과한 7일 하루 강수량은 118.4m였다. 여기에다 강풍이 몰아쳐 대숲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성수 철새홍보관장의 증언에 따르면 태풍 하이선은 태화강국가정원에 값비싼 교훈을 남기고 갔다. 하나는 대나무 간벌 피해다. 십리대숲 은하수길 일원의 대나무는 강풍에 20~30%가 쓰러졌다고 한다. 십리대숲 바깥부분은 10여m 간격을 두고 대나무 한 두 그루가 쓰러졌다면 내부는 산책로를 중심으로 좌우 5m 반경에 성한 대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반대로 삼호철새대숲 등 내부 산책로가 없는 대나무 군락지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대나무는 서식 밀도가 높으면 세찬 비바람에 잠시 휘어지더라도 강한 탄성으로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간벌이 이루어진 대나무 숲은 간격이 벌어지고 탄성이 약해 쉽게 꺾여 쓰러지고 만다. 대나무의 생태 식성을 알지 못하는 무분별한 쏙아내기가 빚은 결과로 추정된다.
대나무의 식생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 그대로다. 인근 삼호대숲과 비교되듯 무분별한 대나무 쏙아내기가 태풍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장으로 가치있는 만큼 피해 현장을 반드시 보존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 2012년 태풍 산바, 2016년 태풍 차바 그리고 2019년 태풍 미탁에 이어 2020년 태풍 하이선은 태화강 국가정원과 십리대숱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태풍과 침수대책이 없으면 태화강 국가정원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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