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당신은 부모입니까, 양육비 채무자입니까④>

진짜 자식은 나 몰라라, 새로운 애인 자녀에게 '아빠 노릇'
한부모가족 지원금 소득인정액, 최저임급 월급보다 적어
양육비이행관리원 "미지급돈 적어 기다려라" 되려 좌절

 

양육비는 단순한 채무가 아니라 아동의 생존 권리다. 하지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자의 무책임한 태도에 한부모가정의 양육자와 아동은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국가 정책은 이들을 더욱 좌절하게 한다. 

이혼 전까지만해도 '딸바보'였던 강민욱(가명·44)씨와 소연이. 울산매일 iusm@iusm.co.kr

#‘딸바보’ 아빠의 배신 
제주도에 사는 이정연(가명·43)씨는 6살 딸 소연(가명)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한부모가족의 가장이다. 2014년 남편 강민욱(가명·44)씨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딸 소연이를 낳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 돼 이혼을 진행했다. 

이정연(가명·43)씨와 강민욱(가명·44)씨 이혼 판결문. 법원에서는 강씨에게 매달 양육비 40만원 지급을 명령했다. 울산매일 iusm@iusm.co.kr

하지만 법원에서 남편의 외도를 입증 받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1년 7개월의 긴 이혼 소송 끝에 2019년 화해결정으로 합의하에 조정 이혼을 해야 했다. 

“위자료는 한 푼도 못 받고 친권과 양육권은 제가 가져왔어요. 그리고 2019년 5월부터 양육비 40만원씩을 받기로 했어요. 판결나고 2달 정도는 제대로 줬는데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제대로 양육비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전남편 강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양육비의 일부 금액인 20만원씩 5번을 입금했고, 이후 지급을 끊었다가 올해 8월에 80만원을 입금했다. 그동안 쌓인 미지급금은 총 460만 원. 이씨는 이런 식이라면 미지급금이 몇 천만 원 쌓이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전남편에게 연락을 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육비 미지급자들처럼 역시나 “돈이 없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SNS에서 본 전남편의 모습은 하소연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잦은 외식을 하고 호텔에서 숙박도 했다. 기념일에는 신발 선물까지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다 이씨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던 건 이혼 후 한 번도 소연이를 보러 오지 않았던 전남편이 여자친구의 자녀들에게는 멋진 아빠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분의 자녀분들 공부를 봐주고 생일이라고 고기 사주고 멀리 여행도 가고 그러더라고요. 자기 자식은 양육비조차 주지 않고 버려두면서 말이죠. 주소지도 오피스텔로 되어 있던데 보증금과 월세 낼 돈은 있는 지 묻고 싶어요. 자식이 1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본인 먹고 살 게 1순위가 되면 안돼죠” 

무엇보다 소연이가 태어났을 때 주위에서 인정할 정도로 딸바보였던 전남편이라 이런 행동들이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항상 딸바보였어요. 너무 잘 놀아줘서 소연이도 아빠랑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제가 소연이를 가졌을 때도 하루도 안 빠지고 배에다 자장가 불러주고 그랬던 사람인데 왜 그럴까?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랬을까요?..” 

한부모가족의 가장인 이정연(가명·43)씨가 퇴근 후 딸 소연(가명)이의 어린이집을 찾아 하원을 시키고 있다. 울산매일 iusm@iusm.co.kr

#현실과 동떨어진 한부모가족 지원금 
이씨는 현재 결혼생활 때 진 빚으로 개인회생 중이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지난해에는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던 양육비가 소득액에 책정 되면서 발목이 잡혔다. 소득액 초과로 신청에서 탈락을 한 것이다. 

당시 조사를 나왔던 시청 직원은 ‘이대로 양육비가 계속 들어오지 않으면 내년에 다시 신청을 해보자’고 했다. 역시나 올해도 양육비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지만 이씨는 한부모가족 지원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받는 상여금을 포함해 계산을 해보니 또 소득액 기준을 넘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씨와 소연이처럼 2인 가족인 경우 한부모가족 지원금 20만원을 받으려면 재산을 포함한 소득인정액이 월소득 1,555,830원보다 적어야한다. 하지만 이 금액은 현재 최저임금 월급 179만원 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20만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월급이 적은 직장으로 옮기거나 일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마음만 커졌다. 

“현실하고 너무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달 개인회생비도 나가는데 그런 돈들을 제외하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는 더 적어져요. 개인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단순히 소득액초과로 안될 거 같다고 얘기를 하니 화도 나더라고요.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거지처럼 살아야지 가능할까 봐요...” 

이혼 후 전남편에게 2년째 양육비 지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정연(가명·43)씨가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울산매일 iusm@iusm.co.kr

#믿고 찾은 양육비이행관리원, 좌절감만 더해 
결국 이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문을 두드렸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당사자 간 협의성립, 양육비 관련 소송, 추심, 불이행 시 제재조치 등을 지원해준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씨는 국가기관에서 나서준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사전에 필요한 기본서류들을 준비해놓고 본격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담 이후 오히려 좌절감을 느껴야했다. 

“양육비가 3개월 이상 미지급 되면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을 했는데 ‘미지급된 금액이 너무 작아서 안 될 거 같다. 기다려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미지급금이 수 천만 원, 억대도 있다’면서 10년 동안 못 받으신 다른 피해자분들의 예를 들어요. 단순히 받아야 될 돈이 적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으니 마음이 안좋았죠”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피해는 액수나 기간으로 산정해 중요도를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기간에도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받아들여질 때까지 끈질기게 전화를 했고 현재는 제주 법률구조공단으로 넘어가 현재 전남편의 재산명시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양육비이행관리원과 통화할 때마다 강조하는 얘기가 ‘전국의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이 다 몰려서 일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 직원을 충원을 하든지 방안을 마련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씨는 화도 나고 답답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해결이 안되더라도 다시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도돌이표 진행을 할 거라고 했다. 법적인 절차 외에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남편을 등재했고 거주지를 찾아가 1인 시위도 계획 중이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이정연(가명·43)씨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자 딸 소연(가명)이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울산매일 iusm@iusm.co.kr

#아빠와의 이별…이제는 둘이서 차근차근 
“발레 학원이랑 그리고 피아노 학원이랑 바이올린 학원이랑 영어학원이요. 또 태권도 학원 다니고 싶어요” 딸 소연이는 배우고 싶은 게 많다. 그만큼 이씨의 근심도 깊어진다. 

“지금이야 이 생활 자체로는 어렵게 이어갈 수는 있는데 소연이가 점점 크면서 원하는 것도 많고 해줘야 되는 것도 많아질텐데 걱정이죠. 특히 사춘기가 되면 모든 상황들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건데 그때까지 제가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이혼 소송 당시 소연이는 아빠를 보고 온 날이면 “아빠, 아빠”를 수없이 되뇌며 목 놓아 울었다. 그 일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아빠에 대해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빠 이야기를 하면 전혀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아빠는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아동 소연(가명)이가 아빠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던 장난감을 만지고 있다. 울산매일 iusm@iusm.co.kr

하지만 6살 아이의 마음 속에는 늘 아빠가 있었다. 인터뷰 진행 중 장난감을 꺼내오더니 “이거 누르면 아빠 목소리 나오는데 고장 났어..”라며 아빠에 대한 숨겨둔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씨는 “저 장난감이 정말 애기 때 갖고 놀던 건데 유일하게 아빠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어요. 소연이가 수시로 눌러보고 아빠 목소리를 들었었는데 얼마 전에 제가 일부러 지웠어요. 지워버렸더니 ‘이제 아빠 목소리 안나오네, 아빠 어디 갔나봐’ 혼자서 그러더라고요. 그 모습 보면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소연이는 아빠와의 이별을 겪으며 많이 힘들었을테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6살 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예쁘게 웃어봐”라고 위로했다. 이씨는 그런 소연이를 보며 앞으로 둘이서 지낼 시간들을 위해 더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본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정연 씨와 딸 소연이의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 ‘울산매일 UTV’ 채널(https://youtu.be/-2YmRxOHARI)과 울산매일신문 홈페이지(www.ius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기획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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