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 (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한국경제, 기업 중심으로 커지며 대규모 소비자피해 증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미비로 모든 피해 구매자가 짊어져
울산, ‘봉’이 되지 않기 위해  활발한 소비자운동 이뤄지길

 

울총(울산총각)으로 생활하는 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촉발한 팬데믹 시대에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디지털 문명이 활성화되면서 그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수도이며 1인당 GDP가 전국최고인 소비 도시다. 그럼에도 울산에선 소비자 권리를 보장하는 소비자 활동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소비자운동은 더 그렇다. 다른 도시에서 만든 갖가지 생활용품을 가져다 쓰고,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 및 택배 주문으로 상품을 선택하므로 상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필자가 오랜 기간 활동해온 전국적이며 국제적인 소비자 시민단체가 있다. 지금도 감사로 활동하는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을 잘 살펴보면 그 답이 보이지 않을까. 1983년에 창립된 ‘소시모’는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전문성과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기초로 소비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는 소비자단체다. ‘소시모’는 특히 소비자의 주권 확립 및 안전성 확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거래 확립,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을 위한 소비자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다른 분야의 NGO와의 연대활동을 통해 소비자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지금은 사상 처음 맞이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소비자운동의 차별화 정책이 필요하다. ‘소시모’는 반세기 가까이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소비자운동을 전개하며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비자단체로 앞장서왔다. ‘소시모’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실증자료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그것을 기초로 소비자 활동을 전개한다. 아울러 소비자 시각에서 소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펼친다. 소비자운동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도 고려하는 인간과 시장 중심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소시모’가 주도한 사례를 몇 가지 들겠다. 1988년 수입과일 자몽과 1993년 수입밀에 위해농약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수입농산물 안전 확보를 위한 전국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수입농산물에 농약잔류 기준이 만들어졌다. 1990년에는 팔당호 골재 채취 백지화 운동을 전개하여 수도권 식수 보호를 위해 정부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상수원보호지역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3년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감시운동본부를 조직하여 투명하고 안전한 의약품 시장을 위해 소비자 권익보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에너지위너상을 시상하면서 기업의 에너지고효율 기술개발 및 친환경제품 생산 확대를 유도함으로써 소비자단체가 주도하고 기업, 정부, 언론이 협력하여 에너지 효율화의 시너지 효과를 낸 대표적 모범실천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독자들은 기억하는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BMW 연쇄 화재, 라돈침대 피해, 5G 이동통신 서비스 불통 등 대규모 소비자피해가 일어났다. 한국경제가 기업 중심의 성장을 강조하면서 정작 소비자는 후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잘못해도 집단소송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소비자권익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소비자가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한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고의나 과실로 대규모 소비자피해가 발생했을 때, 50명 이상이 배상판결을 받으면 모든 피해자가 소송 없이 배상받도록 하는 제도다. 아울러 기업의 반사회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액을 피해액의 최대 5배(현행 3배)까지 징벌적으로 늘리고, 증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징벌배상 소송이 가능한 상법 개정도 서둘고 있다. 그래야 소비자가 ‘봉’이 되지 않는다.

향후엔 소비 가치관과 성향이 명확한 소비자군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가격의 적정성을 포함해 건강, 환경, 사회, 경험을 우선시하는 핵심 미래 소비계층이 형성될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알 권리가 더욱 중요하다. 이미 코로나19로 전 세계 소비자 삶에 큰 변화가 시작됐으며,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소비자운동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뀐다. 과연 울산은 만반의 채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울산에도 활발한 소비자운동이 지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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