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형, 그해 11월은 기나긴 겨울 가뭄의 시작이었습니다. 들녘을 붉게 수놓았던 단풍과 먼 산에서 시작된 낙엽들의 서러운 몸짓은 이미 문수산과 대운산을 지나 서편 하늘의 일몰처럼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대곡천 물빛은 서걱거리는 억새풀에 기대어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득한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대곡천 고대인들 모습은 반구대 암각화에서만 그 숨결을 찾을 수가 있을 뿐, 그들의 행보는 한걸음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뿔 나팔을 불며 귀신고래와 범고래와 사슴을 암각화에 새겼던 고대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 K형, 꽃과 나비들이 돌아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여백의 시간을 억새풀이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그 계절의 시간에 잃어버린 나라 ‘우시산국’을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 바람에 흩어져 꽃씨를 퍼뜨리는 억새풀은 세월에 풍화되어 바람에 흘러갑니다. 대곡천 고대인들도 초겨울 억새풀처럼 계곡을 따라 야산 비탈길로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삼남면 신화리로, 웅촌으로, 삶과 세월을 품고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곳으로 억새풀 바람을 따라 남쪽으로 전진했을 것입니다. 역사이전의 시대에 길을 떠난 그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 역사의 시작이 ‘우시산국’이었을 것입니다.

# K형, 울산이라는 지명도 신라의 이두 표기인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울뫼’에서 시작됐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3~4세기의 부족국가였던 ‘우시산국’은 ‘삼국사기 권44 열전4 거도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2015년 제작 공연한 뮤지컬 ‘태화강’에도 “우시산의 여신이신 학이여” 노래가 등장했습니다. 도시의 정체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의 역사를 소재로 새로운 공연예술이 창작되는 시대가 현대 울산의 정체성 시대입니다. 잃어버린 나라 ‘우시산국’이 억새풀과 함께 공연되어지길 기원해봅니다.

극작가 ?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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