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편집이사

느닷없는 백제소환에 정치권은 연일 역사 공부 중
오랜 금기어인 지역주의가 망령처럼 떠도는 형국
왜곡된 식민교육이 여전히 유용한 우리정치 씁쓸 

염천 더위에 세상이 뒤숭숭하다. 4단계 발령 지역이 늘어나지만 창궐한 코로나19는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김정은이 슬쩍 남북간 통신선 연결 버턴을 눌렀다. 개성에서 신나게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는 쇼를 연출한지 1년반 만이다. 특별히 사과하거나 고개 숙이는 이벤트 없이 슬그머니 통신선이 연결됐으니 그다음은 알아서 해석하란다. 임기 말 이벤트가 필요한 남쪽과 꽁꽁 틀어막은 코로나19의 봉쇄경제가 접점을 찾은 결과라는 북한 전문평론가들의 입질이 요란했던 하루다. 아무리 염천 더위에 코로나가 창궐해도 대선열차는 시끌하다. 지난 한주동안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적자논쟁은 더 거칠어졌다. 출정식 첫 행보로 안동을 택했던 이재명 지사는 영남 대표성을 자처하더니 급기야 백제 대망론까지 애드벌룬을 띄웠다. 민주당의 오랜 금기어인 지역주의가 망령처럼 떠도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무현 탄핵소추까지 부관참시하는 형국이다. 
느닷없는 백제소환에 정치권은 연일 역사 공부 중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무엇일까. 역사 공부는 정치의 기본이다. 문제는 잘못 배운 역사이거나 왜곡된 역사학습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이다. 수전망조(数典忘祖) 네글자는 역사를 이야기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죽비소리 같은 문장이다. 정치인들이 의식처럼 찾는 국립묘지는 지나간 역사,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의 명징한 흔적 앞에 자신을 투영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런 자들이 기본적인 역사 공부는 하지 않고 잘못된 지식으로 삿대질을 하는 정치판은 대국민 짜증유발자와 다름 아니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이 소환한 백제는 정치에서는 금기어 중의 하나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이재명 경기지사다.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성공했는데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청하고 손을 잡았다”는 게 문제가 됐다. 이 발언이 나가자 한건 잡았다는 듯 이낙연 전 대표 측이 공세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후보께서 호남 출신 후보의 확장성을 문제 삼았다”며 “(이 지사의) ‘영남 역차별’ 발언을 잇는 중대한 실언”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양측은 상대방을 향해 서로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성토하며 측근들의 말싸움이 갈수록 난장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뜬금없는 백제소환이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자. 정말 대한민국 5,000년 역사에서 백제만이 주체적으로 우리 민족을 통합하지 못했던가. 이 지사의 발언 속에는 한반도를 주체적으로 통합한 세력은 영남이고 신라라는 뉘앙스가 숨었다. 과연 그럴까. 단언컨대 이재명은 백제의 역사를 잘못 배웠다. 백제는 이 지사가 말한 것처럼 한반도를 통합의 대상으로 삼거나 주체적인 삼한일통을 염원했던 고대국가가 아니었다. 백제는 대륙에서 부여계가 한강 일대로 무대를 넓힌 이후 중국 동해안과 요동, 왜와 가야를 잇는 동아시아 국제무역국가를 지향한 격이 다른 국가였다. 
지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나라 4대 고도(경주·부여·익산·공주)가 모두 세계유산이 됐다. 무엇보다 백제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고조선과 가야를 제외한 한반도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왕조들의 수도가 세계유산이 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됐다. 우리가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던 백제는 사실, 고대 동아시아 패권구도에서 엄청난 위상을 가진 국가였다.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 멸망할 때까지 700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 왕국이 백제다. 문제는 1970년대 이후 가속도가 붙은 고대문화유적 정비에서 백제는 후순위로 밀렸다.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이 신라 중심에 편중된 이유였다. 
이재명이 소한한 백제의 실체는 무엇일까. 백제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교수는 한문장으로 이야기한다. “백제의 자기 개성과 국제성, 개방성은 고대 동아시아 공유문화권(共有文化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노 교수의 저서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는 우리가 몰랐던 백제를 새롭게 보는 눈을 갖게 했다. 고대국가 가운데 중국 대륙과 한반도, 왜(倭) 등과 폭넓고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던 유일한 국제무역국가 백제의 실상이다. 그 바탕은 개방성과 다양성이었고 이 부분을 간과했던 신라가 반쪽 통합을 이룬 후 국제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백제마케팅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라는 백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8세기 세계 4대 강국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고대사의 권위자인 김영하 전 성균관대 교수는 신라의 삼한일통을 반쪽으로 규정한다. 김 교수의 주장만이 아니라 이 부분은 지금 우리 고대사학계의 주류논리다. 고구려 일부를 포함한 신라의 삼한일통은 신라가 벌인 7세기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자기위안이었을 뿐 실질적인 통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일제 총독부 산하 역사왜곡 전문가들의 역사왜곡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폐해라는 설명이다. 일제는 고구려 세력이 건국한 발해를 한국사에서 배제하기 위해 신라의 통일을 강조했고 신라통일론을 정설로 만들어 한국사를 한반도 남쪽으로 축소했다. 지금 우리 역사학계의 젊은 학자들이 파고든 연구 결과다. 그런 백제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안동에서 영남역차별을 흘리고 염천 더위에 백제 통합론을 띄우는 정치판의 저렴한 역사의식이 참 초라해 보이는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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