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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칼럼]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상) 빨래건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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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1.08.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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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1935년 발명 전기 빨래건조기 2차 세계대전 후 대중화
오늘날엔 쾌적한 집안 환경 조성해주는 가전 자리 잡아
공간의 시각적 공해 없어져 거실 본연의 기능 되살아나

 

빨래가 지긋지긋하게 마르지 않던 장마철이 올해는 유난히 짧았다. 소나기가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내린다. 이웃한 일본은 오래 전부터 이런 습한 기후로 고통 받았다고 한다. 여름철 일본을 여행해본 분들은 아마도 섬나라 특유의 한국보다 더한 끈적끈적한 습함과 불쾌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장마가 길고 비도 더 많이 내린다. 특히, 다습한 기후 그리고 목조주택이 많아 곰팡이에 특히 민감하다. 그들에겐 바람과 햇볕이 곰팡이 제거의 최고의 방법이다. 더구나 공중보건에서 아주 중요한 살균 효과를 위해 자외선이 있는 햇볕 아래 널어 빨래를 말리는 방법을 수고스러움에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본의 주택가를 거닐다 보면 발코니에 널려 살균되고 있는 빨래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고 거주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대부분이 아파트나 주상복합, 그리고 원룸에 살고 있다. 베란다가 없는 그 공간들은 빨래를 널 공간조차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자연 건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집을 가봐도 흉물스러운 구조의 빨래건조대를 거실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좁디좁은 집의 일부를 멋지지도 않은 빨래건조대와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마당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 것만 보고 자란 필자에겐 빨래건조기는 딴 세상 이야기였고, 대학을 위해 상경을 했던 90년도 초반에도 빨래건조기는 일부 상류층에게만 국한돼 있었다. 대학시절 자취를 했던 터라 통돌이 세탁기 하나로 모든 의류를 관리했었다. 입을 옷이 많지 않았던 대학시절 소개팅이라도 하는 날이면 전날 빨래한 옷이 덜 말라서 아침부터 헤어 드라이기로 바지와 셔츠 구멍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기 일쑤였다. 세탁기 한대, 그 위에 매달린 철제 빨래건조대, 세탁세제통들이 전부인 그 좁은 다용도실에서 매일 빨래를 하고 말리는 것이 힘겨웠다. 

그러했던 필자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면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한여름 잠깐을 제외하고 일년 내내 비가 와 습한 그곳에서는 학생기숙사든 원룸이든 빨래건조기는 필수품이었다. 그곳에서는 빨래 말리는 행위가 더이상 고역이 아니었다. 필자가 살던 집에는 개인용 세탁기와 건조기가 함께 있어 공동빨래방이 만원이면 친구들이 한가득 빨래를 들고 우리집으로 놀러오곤 했다. 세탁기만 있다면 빨래하러 올 수 있지만 수분을 머금어 몇배로 더 무거워진 젖은 빨래를 다시 집으로 들고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외로웠던 유학시절 빨래건조기가 없었다면 그런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이런 추억에 잠겨있자니 갑자기 빨래건조기가 고마워진다. 

오늘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삼신가전인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와 더불어 빨래건조기도 필수로 꼽히는 시대가 됐다. 아파트라는 거주 환경의 보편화, 그리고 바빠진 일상과 고통스러운 미세먼지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건강 이슈, 그리고 그 결과로 휴식 공간으로서 집에 대한 기능이 변화하고 있다. 빨래를 밖에 너는 것을 꺼리게 되면서 빨래건조기는 빠르게 우리의 필수 가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빨래건조기는 건조대가 차지하던 공간의 시각적 공해를 없애고 거실다움으로 되돌려주었다. 빨래건조기에서 방금 나온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그 촉감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촉각은 물론 후각적 감동을 줄 만큼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 경험에 익숙해지면서 더이상 감동적이지 않게 됐고, 이제는 빨래건조기가 토해내는 빨래들을 개는 번거로움에 투덜거린다. 이를 재빨리 눈치 챈 일부 가전기업들이 빨래 개는 가전을 국제가전쇼에 선보이고 있지만, 이런 현상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욕망에 끝이 안 보인다. 자동 빨래 개는 가전이 대중화된다면 결국 개어진 옷을 정해진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 주는 로봇을 궁극적으로 바랄 것이다.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세상은 안 왔으면 좋겠다. 인간에게 있어 일정량의 육체적 노동은 장수와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하니 특히 그렇다. 

현대사회의 안락하고 쾌적한 집 안 환경을 조성해주는 대표적인 가전제품이 된 빨래건조기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799년 프랑스인 뽀숑(Pochon)의 손에서 탄생했다. 최초의 건조기는 공장 노동이 많아지면서 늘어난 빨래를 빨리 말리기 위해 드럼통에 많은 구멍을 뚫고 드럼통 아래에서 불을 피워 빨래가 타지 않게 손잡이로 드럼통을 돌리는 형태였다. 이 직화 방식은 화재의 위험과 옷감이 타는 것 외에도 연기 냄새가 옷감에 베이고 그을음이 묻는 문제들도 발생했다. 이후, 미국의 로스 무어(Ross Moore)는 그의 어머니가 노스 다코타(North Dakota)의 혹독한 겨울에도 집밖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 것을 보고 헛간에 기름으로 불을 피워 회전드럼통을 가열하는 빨래건조기를 최초로 만들게 된다. 그는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935년 전기로 작동되는 빨래건조기를 발명하게 된다. 이 기술이 미국의 대형 가전회사들에 팔리면서 1941년부터 빨래건조기가 미국의 빨래방에 처음 설치돼 사용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가전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건조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정용 빨래건조기는 북미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빨래를 바깥에 너는 것을 꺼리는 서유럽 문화의 영향으로 빨래건조기의 미국 내 보급은 빠르게 확산됐다. 역사적으로 빨래는 하인들의 일이었고, 하인들이 하던 천한 일을 백인들의 거주 공간에서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큰 거부감으로 작용한 듯하다.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 빨래를 외부에 널어 말리는 것이 마을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웃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외부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일부 주들에서 발의되고 채택된 경우도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9년 10월이 돼서야 야외 빨랫줄 설치 금지 규정이 폐지됐다고 한다. 실외에서 빨래를 말리려는 것 때문에 미국에서 이웃지간에 심지어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빨래건조기가 인류의 평화에도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빨래건조기의 보편화는 빨래건조기에 넣어도 되고 또한 덜 구겨지는 옷들을 선호하게 됐고 그 결과 정장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다림질을 필요로 하는 옷을 자주 입지 않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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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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