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蜀漢)의 유비(劉備)는 적벽대전 이후에 군사(軍師)인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형주, 양양, 남군을 얻자 무척 흡족했다. 
 지난날에 두번이나 유비를 구해 준 이적(伊籍)이었다. 유비는 예를 갖춰 즉시 그에게 자리를 내주고 계책을 물었다. 그러자 이적이 말했다. "형주의 구원지계를 아시려고 하면 어찌하여 먼저 어진 선비를 찾으시려 하지 않으십니까?" "어진 선비가 누구요?" "형양 땅 마량(馬良)의 다섯형제가 모두들 재명(才名)이 있는데 가장 어진 이는 양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난 양(良)으로 자는 계상(季常)이라고 합니다. 향리에서 평판이 자자한데 마씨집 오상(五常)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백미가 있는 마량이 제일 뛰어나다고 하더이다" 현덕은 즉시 명하여 그를 청하여 오게 하였다. 삼국지의 촉지(蜀志) 마량전(馬良傳)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백미(白眉)라는 말의 본래 뜻은 흰 눈썹을 지닌 사람으로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흔히 예술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말할 때도 쓰이는 말이다.
 지난 23일 94세로 별세한 조순 전 경제부총리, 많은 이들이 그의 길고 빽빽한 흰 눈썹과 번뜩이는 눈빛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그를 일컬어 ‘백미’라고 했다. 한편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인기일 때는 ‘서울 포청천’으로도 불렀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산행을 즐겨 ‘산신령’이라고도 했다. 그는 산신령 별명을 가장 좋아했다.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큰 족적을 남긴 그는 평생 학자로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육사 교관이던 때 제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현실 참여형 학자’로 변신했다.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1992년부터는 1년간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물러났다. 이후 인기에 영합 않는 ‘대쪽 학자’ 이미지를 갖게 됐다. 
 또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당시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여의도 광장을 나무가 우거진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를 2번 지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선비 중 그는 유일하게 삼국지의 백미 마량 같은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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