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내부문제 속성
야당 내부결속과 대조적인 여권의 상황
레밍처럼 맹목적 추종 또다른 참사 불러

 

 지난 2016년 가을 초입. 울산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태풍 차바가 몰고 온 폭우는 태화강을 넘어 태화루 아래 구시가지를 집어삼켰다. 악몽이었다. 바로 그 악몽의 현장이 서울에서 재현됐다. 강남역 인근에 쏟아진 시간당 90㎜의 폭우는 서초구 일대를 마비시켰다. 불과 2시간 안쪽에서 벌어진 재앙이다. 딱 11년 전이다. 서울 강남 우면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아파트 하단부를 덮친 장면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악몽의 반면교사로 특단의 조치를 외치던 서울이 왜 또 이런 재앙을 맞았을까. 우면산 사태 때 서울시장은 지금 서울시장인 오세훈이었다. 물난리 이후 오세훈 시장은 상습 침수 지역 7곳에 '빗물 터널'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토목 전문가들은 "기존 배수로가 일반 도로라면 '빗물 터널'은 고속도로"라며 반겼다. 하지만 이 계획은 상상으로만 존재했다. 오 시장이 중도에 물러나고 그해 가을 시장이 된 박원순은 대형 토목공사를 추진한 전임 시장을 비난하며 빗물터널을 뭉갰다.
 10년이 넘은 이 이야기가 새삼 되살아나는 이유는 폭우 때문이다. 평화의 시기, 안정의 시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사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순간은 위기 상황에서라야 만날 수 있다. 지금 집권당의 상황이 딱 그 지점이다. 부어라 마셔라 어깨 걸고 흥건할 때는 모든 것이 묻히기 마련이다. 사냥의 순간이다. 니가 잡든 내가 잡든 대물 한 마리 잡아 어깨에 들쳐 매는 순간까지 사냥의 무리는 모두가 동지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대물을 베이스캠프로 끌고 온 다음, 굶주린 사냥 동지들의 눈빛은 변한다. 내장의 온기를 고스란히 자루에 담아 최고의 영양분을 쥐려는 자와 내장을 감싼 살코기의 촉촉한 부위를 모조리 차지하려는 자, 등짝과 둔부의 뭉툭한 살점을 도려내 얼음 가득 채워놓은 자루에 담아가려는 자, 모두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이 빨라진다. 
 하태경은 의리를 내세운다. "현재 국민의힘은 뻔히 죽는데도 바다에 집단으로 뛰어드는 레밍과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 한 문장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부연 설명한다. 그는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아니고, 강제 불명예 축출하는데 순순히 따라줄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고 이준석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준석맘으로 불리는 정미경 최고위원은 이성적이다. 자신이 가진 최고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으며 이준석 대표를 향해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준석 대표는 대장의 길을 가야 한다.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나. 대표가 여기서 좀 더 나가면 당이 더 혼란스러워지고 위험해진다.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냥은 끝났다. 이른바 윤핵관은 대물의 심장과 내장, 그리고 부드러운 살코기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눈치 빠른 준석맘은 "이제 우리는 가죽과 뼛조각을 쥐고 하산할 시간이다. 내려가 가죽을 말리고 뼈를 고아 푹 삶은 곰국을 만들어 겨울을 대비하자"고 등짝을 쓰다듬는다. 아쉬움에 사냥터를 쭈뼛거리면 결국 돌아오는 건 내장과 살점으로 속을 든든하게 만든 사냥꾼의 멱살잡이뿐이다. 정미경 최고는 준석 맘답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준석아, 세상 좀 살아봐서 아는데, 이쯤하고 봄까지 스타디나 하며 지내자" 
 권력의 냄새에 지독한 촉수를 가진 이재명 의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20%대까지 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 반색한 듯 낯빛이 말갛게 변했다. 법카 의혹 수사가 옥죄여 오자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여유도 생겼다. 다함께 죽자고 물길로 뛰어드는 레밍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고슴도치 전략이다. 고슴도치의 성공전략은 하나의 확고한 비전을 갖고 오직 그것에만 집중함으로써 결국 목표를 달성해 내는 무서운 속성을 잠재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은 저서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인간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눴다. 고슴도치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에 관련시키는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여우형이다. 여우형은 다양한 생활방식이나 복잡한 세상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고슴도치형 인간에게 언제나 당하는 유형이다. 고슴도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고 질긴 승부 근성으로 살아남는다. 스스로의 보호막을 어떻게든 구축해 마지막 승리의 순간을 위해 모든 전략을 총동원하는 유형이다. 
 당 대표 선출이 한창인 더불어민주당의 쟁점은 당원이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을 때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 개정 문제다. 당헌 80조는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항을 변경해 달라는 청원이 느닷없이 들어왔고 쟁점이 됐다. 박용진은 이재명 방탄용이라며 반발하고 이재명은 뒷짐만 지고 있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온갖 혐의로 검경 수사가 좁혀져 오는 이재명을 위한 '맞춤 청원'이라는 해석이 떠돌지만 고슴도치의 속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셀프공천을 폭로한 박지현 최고를 무대응 무시 전략으로 내려 앉히고 이제 검찰 기소에도 대표직으로 방탄조끼를 철갑으로 둘렀으니 이번 여름 보신은 제대로 한 셈이다.
 지화자,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 쪽 사정은 갈수록 자중지란이다. 이쯤 되니 지난봄 잔인한 3월의 0.73% 악몽이 조금씩 아물어간다. 일등 공신은 이준석이지만 윤핵관이 주접을 제대로 떨었기에 가능했다는 심사평도 떠돈다. 전국을 돌며 패기의 보양식을 골고루 섭취한 이준석이 준석 맘의 충고를 들을 리가 없다. 당장 대표직 복귀를 노리기보다 다음을 기약하는 포석은 고슴도치다. 어쩐지 국민의힘 쪽은 고슴도치를 키우는 우리가 없어 보인다. 레밍과 여우만 득실거리니 '어대명' 깃발에 풀칠한 이재명의 어깻죽지가 더 뻣뻣해지는 말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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