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 작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 ‘녹화사업’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대 초 강제징집을 통해 운동권 학생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용도로 ‘녹화사업’에 나섰다. 1981년 11월부터 1983년 말까지 447명의 대학생을 강제징집하여 군대로 보냈다. 녹화사업에 따라 강제징집자들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통해 의식화의 정도를 측정받고, 이후 체제를 긍정하도록 보름에서 두달간 이른바 ‘역 의식화’ 교육을 받아야 했다. 
 더욱 악랄한 것은 보안사가 교육성과의 검증이라는 이유를 들어 256명에게 이른바 ‘프락치(끄나풀)’ 임무를 맡겼다. 이들을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후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학생운동권의 동향을 수집하여 보고하도록 강요했다. 친구를 팔라는 프락치 공작은 국방의무를 지는 사병들을 공작정치의 도구로한 비열한 인간성 파괴행위였다. 일부는 친구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다 아는 정보를 물어다 주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몇가지 사실이나 이름을 대주고 평생을 괴로워했다. 동지를 팔고, 그래서 다시는 동지를 만날 수 없어야 전향으로 인정했다. 
 1984년 녹화사업과 학원 프락치 공작으로 인한 사망자가 잇달아 발생했다. 프락치 공작은 노동계에서도 조직적으로 자행됐다.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의 경찰특채 과정을 두고 ‘프락치’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 내부가 어수선하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는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와 함께 낸 성명문에서 김 국장이 성균관대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다가 1983년 4월 군에 강제 징집돼 국군보안사령부의 녹화사업 대상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전역 이후인 1988년 인노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9년 1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인노회 회원 15명이 구속되고 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인노회 부천지구 위원장이었던 김 국장이 돌연 종적을 감췄으며 동료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던 8월 경찰에 특채됐다.김 국장은 동료밀고 의혹에 대해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부인했다. ‘프락치 의혹’ 흑역사가 경찰국 출범에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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