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탄소중립의 시대'를 맞이했다. 기록적인 폭우, 폭염과 같은 종잡을 수 없는 이상 기후가 매해 수위를 높여가며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울산을 비롯한 동남권을 할퀴고 간 태풍 '힌남노' 역시 기후 변화가 일으킨 슈퍼 태풍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상생활을 넘어 경제,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급격한 기후변화의 복판에서 인류는 '탄소 중립'이라는 해법을 강구했다. 평균온도 상승을 멈출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이른바 '2050 넷제로'를 실현해야 한다.

'넷제로'(실질 탄소 배출량 0)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을 위해선 국가와 지자체, 기업 등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인식전환과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

이에 수년 전부터 해외에서는 '제로웨이스트'가 각광받고 있다. 개인이 탄소중립 사회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해갈 수 있는 실천 방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장기화로 마스크, 비닐장갑 등 피할 수 없는 일회용품 사용이 대폭 늘어난 만큼 의식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지는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베를린 등 국내외 제로웨이스트 선도 사례를 취재해 울산 시민들의 일상 속 탄소중립 실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울산형 제로웨이스트 활성화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룬처스 내부.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첫 방문한 기자의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불편함에 익숙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녹색 전환'을 선도하는 친환경 도시인 비엔나 시민들에게 '작은 불편함'은 그저 일상이자 생활으로 녹아있었다.

찬란한 전통을 간직한 수많은 문화유산과 현대적 도시, 빈틈 없이 펼쳐진 녹지 사이로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즐겼다. 지역을 촘촘하게 메꾸고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인 트램과 전기버스는 이들의 발이 되어 탄소 발자국을 감축시켰다.

다회용품을 갖추지 못하면 축제를 열 수 없도록 규정했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 봉투에 오트밀, 소금 등 식재료를 담는 모습들이 자연스러웠다.

오스트리아의 국민 생수라고 불리는 voslauer(뵈슬라우어)는 재활용과 지속 가능성 및 환경에 전념해 2020년부터 100% 재활용된 rePET 병에 담에 판매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탄소 중립 움직임에 발맞춰 비엔나에 실생활 속 탄소 중립을 전파한 또 다른 선구자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피하기 위한 최우선 선택지로 거듭난 지역 기반의 제로웨이스트 숍 '룬처스'(Lunzers Maß-Greißlerei)다.

지난 2014년 1월 문을 연 독일어권 최초의 포장 쓰레기 없는 가게인 룬처스를 필두로 이제 비엔나 곳곳에서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가게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제품에 대해 설명하는 안드레아 룬처스 대표.
 
룬처스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술.
 

#포장이 필요 없는 세상으로

평일 가게 오픈 시간보다 약간 이른 오전, 룬처스의 대표 안드레아 룬처스를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안드레아는 지속 가능성 중요성에 대해 토로했고, 60분 가량 이어진 인터뷰 중에도 역시 자전거를 탄 손님들이 쉴새 없이 가게를 방문해 익숙하게 물건들을 계량하고 구매했다.

400여개의 제품으로 시작한 그의 가게에는 이제 1,200개의 제품이 각각 맞는 용기에 빼곡하게 담겼고, 6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제품은 유기농 로컬푸드부터 친환경 화장품, 식료품, 디저트에 술과 와인까지 다양했다.

안드레아는 용감한 개척자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유기농 회사의 상품 포장 관련 부문에서 일을 했지만 고객이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같은 조건부 해결책(분해하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포장이 아니라 '포장' 자체가 필요한가에 의문을 가진 안드레아는 결국 '포장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비엔나에 직접 무대를 만들어 냈다.

안드레아는 "결심한 지 3일 만에 덜컥 가게를 계약할 만큼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다만 가게 시작을 위해 내 재산 뿐만 아니라 친구 및 가족의 지원을 받았기에 두려움도 있었다"라며 "그래서 처음에는 가게의 절반은 까페로, 절반은 물건을 들였다. 하지만 오픈 당일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어 "제로웨이스트숍의 방식이 낯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시스템은 과거, 우리 할머니들 시절에 동네에 있던 작은 식료품점 들이 다시 등장한 것과 같다"라며 "사람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작은 불씨만 당겨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룬처스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로컬푸드.
 
룬처스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로컬 치즈, 채식고기, 햄버거 등.
 

#가격 보단 신뢰와 질 우선시, 지역 상품으로 탄소 발자국 감소

룬처스에 들어오는 모든 제품은 유기농이며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경우 오스트리아 산을 고집하고 있다. 한 마디로 유기농 '로컬 푸드'다.

과일과 야채, 우유, 치즈 등의 공급을 위해 인근 지역 농장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모든 식료품을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들여와 유통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포장 폐기물을 줄이고 식품 운송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냉장 보관이 필요한 과일과 채소 등의 경우 이동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크다고 덧붙였다.

샴푸나 린스, 세제 등 공산품의 경우 신생 업체들과 계약을 통해 포장 없는 유통 과정을 완성했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요구로 자연친화적인 제품들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안드레아는 "유통의 불필요한 과정과 포장이 빠지면서 유기농 로컬 제품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합리적은 가격을 맞출 수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직접 포장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비싼 가격인 것도 알고 있다. 그 대신 제품의 질을 타협하지 않기에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를 고객과 쌓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에 룬처스 인근에 작은 슈퍼마켓과 대형마켓들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고 독일어권 내에 100개 가까이 되는 제로웨이스트 숍이 문을 열어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이제 비엔나 시장경제에 제로웨이스트숍이라는 스타일이 조금은 녹아 들었다고 본다"면서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작은 부분이다. 더 큰 확산을 위해선 대형 슈퍼마켓, 유통업체, 대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일을 시작할 차례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들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룬처스에 방문한 손님이 직접 가져온 공병에 식료품을 담고 있다.
 

이날 룬처스를 찾은 고객중 인터뷰에 응한 한 비엔나 시민은 "슈퍼마켓이 당연히 더 편하고 저렴하지만,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불필요한 포장이 없어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이다"라며 "누군가 대량 생산하고 사들은 물건이 아니라 신경 써서 고른 제품들이라는 부분에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비엔나에서도 제로웨이스트 숍이 모두에게 당연한 문화는 아니다. 우리는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 일회용 포장 용기가 없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라며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포장 없이 살았고, 사실 포장이 없다고 그렇게 불편한 일도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백주희 기자·사진=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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