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조건-2] 외면 받는 아프가니스탄 이웃에 도움의 손길 건네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이주 소식이 알려지자 울산 전체가 들썩였다. 환영의 의미만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을 놓고 울산 시민들 사이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누구도 쉽게 곁에 다가서지 못했던 그때, 추위만큼이나 얼어붙어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오던 날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적십자봉사회 동구지구협의회 송연정(65)회장은 1년 전 양손 가득 짐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던 특별기여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얼핏 보이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송 회장은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눈인사를 나눴는데 심각한 표정이었다. 활기나 생기는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고향에 모든 것을 두고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적십자 봉사회 동구지구협의회는 특별기여자들의 초기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생필품을 제공했고, 6개월간 도우미를 배치해 일상생활 적응을 도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있었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우리나라 인식이 너무 좋지 않았다. 처음 봉사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부에서 '이렇게 반대가 심한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적십자봉사회는 어디라도 달려갈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제의를 받고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전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분들이 오면 우리가 관리를 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당시 적십자봉사회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자부심도 결정에 큰 몫을 했다.
봉사자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탈 없이 잘 진행해왔다며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이주 초창기 특별기여자들이 머무는 숙소에는 적십자봉사회 회원들 말고는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되레 그 곳을 찾는 봉사자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졌다고.
송 회장은 "한번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바랄뿐이다.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론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가 뭔데 그러냐'는 식의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손가락질도 많이 받아서 어디 가면 돌멩이 맞을까봐 겁나기도 했다. 그래서 알아보지 못하게 적십자의 상징인 조끼도 벗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크게 상처 받았을 법도 하지만 그는 "좋은 일 하다 보면 일일이 신경 쓰고 못한다"라며 웃어 넘겼다.
일상생활에 밀착해서 이들을 돕다 보니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중에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하루는 한 어머니가 복통을 호소해 급하게 병원을 찾았는데 검사 결과 자연 유산이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통역사가 없어 의사와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송 회장은 "당시 보호자가 없어서 다음날 남편의 확인서를 받아 수술을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수술 끝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데려다줬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때 미역국을 먹지 않나. 마음이 쓰여 미역국을 사서 전해줬다"고 말했다.
도우미 활동이 끝난 후에는 이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추석에는 '송편만들기', 김장철에는 '김치 담구기' 등의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봉사자들 각자 사용하지 않는 의류나 물건들을 가져와 나눠주는 '프리마켓'도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음꽃이 활짝 펴 보는 사람들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고. 이 같은 봉사자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아프간 사람들도 변했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김치를 담궈 주면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김치 큰 통 주면 안 먹고 버릴 것 같아서 작은 통을 사서 줬는데 안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변할 수는 없고 이렇게 조금씩 변화는 거 아니겠나. 그것만으로도 한국에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을 알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지역사회 반감 극복 위해 동분서주
적십자봉사회가 이들의 초기 정착을 도왔다면 이후부터는 울산동구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나섰다.
센터는 이들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난해 4월 정착 지원 사업 전담 사회복지사 김지수(27)씨를 채용했다.
업무를 시작하면서 김씨는 자신의 역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첫째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불안함을 경감시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불안함 경감을 위해 아프간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도록 돕는 것 즉, 조기정착이었다.
지역사회의 반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그 중 하나가 아프간, 내국인 가족들이 소통하는 '함께하다'라는 공모 사업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각각의 10가정을 모집해 총 10팀을 만들어 가족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활동을 제시하거나 지원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만나 놀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시작은 어려웠다.
그는 "사업 홍보를 위해 사회복지사라며 전단지를 건네면 주민들이 호의를 보였는데 아프간 사람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보고는 '이런 거였으면 받지 않았을 거다', '나는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듯이 아프간 가족들은 10가족 이상 지원을 해 선별을 해야 했지만, 내국인 가족은 4가족밖에 모집이 되지 않아 결국 사업이 두 달 가까이 지연됐다고.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전단지 부착, 공공기관 요청, 초등학교 사업 안내 등 직접 발로 뛰어 겨우 10가족을 모집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 넘었다.
사업이 끝난 후 익명으로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는데 내국인 가족 가운데 "기간 짧아 더 많이 활동하지 못해 아쉽다", "나도 반대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는데 그때가 너무 후회된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던 것.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이 아닌데도 "나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해라", "당신들은 잘 적응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형식적인 말들이 아닌 본인들의 진심이 느껴져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했다고.
이외에도 센터에서는 경제 교육, 체벌 없이 하는 훈육 방법, 범죄 예방 교육, 디지털 교육, 집단 상담을 진행했고, 문화탐방, 힐링체험도 함께했다.
김씨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서 변화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을 향한 비난에도 무너지지 않은 아프간 사람들의 긍정적인 힘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은 '우리는 테러 집단이 아니다.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한편으로는 '사실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나라도 우리가 싫었을 거 같다'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다. 오히려 그런 상처를 딛고 '더 적응을 잘해야지'하는 힘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 이 분들의 원동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줘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초반에는 너무 암담한 상황이어서 희망이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줬다고 하면 이제는 현실감을 갖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이제 1년 지났고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남았으니 그 시간을 어떻게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까 고민하고, 목표를 세우고 실현 가능하도록 사업을 구상해 나가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은 울산매일 UTV 채널(youtube.com/iusm009)과 QR 코드, 홈페이지(www.iusm.co.kr), 인스타그램(@ulsan_maeil)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신섬미 기자01195419023@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