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의 해양평전-23] 일본 쇼군·다이묘-오야붕·고붕
日 막부시대 개막 정치구조 기틀 마련 지역영주 다이묘 · 수장 쇼군 권력장악 오야붕 · 고붕체제 근간 절대복종 형성
역사적으로 일본의 실제 통치는 무력적인 쇼군<將軍>의 막부(幕府: 바쿠후)였다.
‘幕府’는 과거 중국에서 영토 정벌 등의 이유로 왕을 대신해 외부로 나간 군대 지휘관들이 야외에 천막을 치고 군사 작전을 지휘한 곳이지만 일본에서의 막부는 무인(武人) 가문의 통치 본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소위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분열을 무력으로 통일을 이뤘고,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본격적으로 막부 정치를 폈다.
11~12세기에 이르면서 토지 지배권자(나중에는 소유권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다이묘(大名)’다.
다이묘들은 쇼군의 부하로서 각 지방의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법률적인 토지 관할권을 행사했는데, 14세기 이후는 이른바 슈고(守護) 다이묘, 15세기에는 센고쿠 다이묘로 세력이 커져 영지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성(城)을 짓고 가신(家臣)들도 지휘했는데, 가신들 역시 영지와 성을 가진 소영주였다.
도쿠가와 시대(1603~1867)의 다이묘는 마침내 쇼군이 직접 장악하고 있는 곡창지대를 제외한 전국의 ¾을 다스렸다. 다이묘들은 쇼군과의 관계에 따라 ‘신판(親藩: 쇼군가문의 근친)’과 ‘후다이(譜代: 대대로 쇼군가문을 섬겨온 가신)’ 및 ‘도자마(동맹관계)’ 다이묘로 분류되는데 이들 다이묘는 자신의 영지 안에서 쇼군의 허락을 받아 자체적으로 지폐 발행까지 했다.
1868년! 이른바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 바쿠후 정권은 종료되고 다이묘들은 자기 영지의 소유권을 덴노(天皇)에게 돌려주는 혁신 소위 ‘惟新’을 했다. 그 대신 그 땅을 다스리는 지방장관이 됐다.
1871년에 다이묘의 영지는 완전히 폐지됐고 다이묘들은 도쿄에서 연금을 받으며 사는 귀족이 됐다. (지도 참조)
사무라이는 무사(武士)들이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92~1333)의 사무라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무예를 지녔으며 자신들의 극기주의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절도있는 문화를 일으켰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8~1573)의 사무라이들은 선(禪)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다도나 꽃꽂이 같은 일본 고유의 예술들을 탄생시켰고 무사도(武士道)도 정립돼 용기, 명예, 충성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불명예나 패배를 당했을 경우에는 할복(割腹·셋푸쿠) 자살을 택했다.
도쿠가와 시대(1603~1867) 사무라이들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에 불과했지만 사회질서를 정착시키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인 지위 ‘武士’를 상징하는 2자루의 검을 차고 다녔다. 250년간 도쿠가와 바쿠후시대 사무라이들은 관리(官吏)가 되어 덴노(天皇)에게 무조건 충성했다.
1871년, 봉건제도가 철폐되면서 사무라이의 특권적인 정부 관리 지위는 상실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사무라이들이 1870년대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새로 창설된 관군에 의해 진압됐다.
해역(海域)과 바다에서는 별도의 세력인 해적(海賊) 세력이 활동했다. 이들 해적들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항만이나 해변, 섬 등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면서 육지 지배자와 대립하는 바다 호족 계층이었다.
대표적인 일본 해적은 931년부터 히부리시마에 근거를 둔 후지와라 스미토모계였고 중세 이후에는 세토나이카이에 근거지를 둔 노시마 무라카미가 대표적인 해적호족이었다. 이들 해적들은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토나이카이 진출에 따라 수군(水軍)으로 편성되면서 해적은 사라졌다.
근대에 들어 일본 사회는 오야붕(親分)·고붕(子分) 관계 체제가 일어났다. 오야붕은 부모를 뜻하는 ‘親’에 책임 등을 뜻하는 ‘分’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로서 ‘부모의 구실을 하는 사람’이다.
이들 ‘오야봉’을 ‘오야지’라고도 하는데 식민지 때 한국에서의 오야붕은 두목 우두머리를 가르쳤다.
꼬붕(子分)은 소위 따까리 부하 등을 가르킨다. 한자표기 ‘子分’은 자식을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위치, 책임 등을 뜻하는 ‘分’이 합하여 ‘자식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한때 오야붕·꼬붕의 말이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는데 인기 TV드라마 「야인시대(野人時代)」의 영향이었다. 우미관패거리 두목인 김두한이 오야붕이었다.
역사 때부터 DNA처럼 형성된 이런 쇼군·다이묘, 사무라이, 오야붕·꼬붕의 일본인이 묘한 집단 체제는 그들의 행동을 매우 비이성적으로 작동하게 했고, 근대에 들어 마침내 일본 군국주의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계 제2차대전 동원체제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덴노(天皇)의 존재를 정점으로 일본 국민을 쇼군·다이묘, 사무라이, 오야붕·꼬붕 관계의 체제를 그대로 몰아넣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기묘한 ‘쇼군·다이묘’의 관계 구조는 절대서열 의식의 정치구조를 만들었고 모든 인간관계는 절대복종 관계의 사무라이 ‘오야붕(親分)·고붕(子分)’ 사회체제를 만들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본 사회구조는 일본인들을 겉으로는 ‘예의(禮儀) 바른 모습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사실 무조건 순종·복종형 일본인’들을 만들었다.
이것이 결국 1930~40년대 군국 침략주의 원천이 됐고 마침내 어느 순간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동인(動因)으로 작용해 겉과 속이 다른 비정(非情)한 일본 국민을 만들었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이런 일본 사회 구조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